프랑스 지리학자 드조쉬는 1800년 ‘아시아전도’를 만들며 ‘한국해(MER DE COREE)’라고 표기했지만, 1805년 지도에서는 ‘한국해 또는 일본해(MER DE COREE OU DU JAPON)’라는 명칭을 썼다. 1811년 프랑스의 들마르마쉬는 ‘아시아지도’에서 ‘한국해(MER DE COREE)’라고 표기했다가, 1819년 ‘아시아지도’에서는 ‘일본해’로만 썼다.이처럼 한국해가 일본해로 바뀌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프랑스의 라 페루즈(1741~1788) 항해이다. 루이 16세(1728~1793)는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이 가보지 못한 한국의 동해안, 타르타르 해안, 홋카이도, 쿠릴열도, 캄차카반도 탐험을 목적으로 항해를 진행시켰다. 부쏠(Boussle)호와 아스트롤라브(Astrolabe)호로 출발한 라 페루즈는 1787년 남해를 통과하면서 제주도와 울릉도를 실측하고, 이듬해 ‘세계탐험기(Voyage autour du monde)’를 냈다.
라 페루즈는 이 탐사에서 한국관련지도를 8장 그렸다. 한국해와 일본해 표기없이 타르타르 연안쪽에 타르타르해협(Manche de Tartarie)이라고만 표기한 지도도 있고, 일본해라고 표기한 지도도 일부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해는 울릉도에서 오른쪽으로 뚝 떨어진 일본열도 가까이 표기됐음을 알 수 있다. 이진명의 ‘독도, 지리상의 재발견’에서 보듯이 라 페루즈는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부근 섬을 분명하게 한국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번의 항해에서 표기를 달리한 지도를 몇 점 그렸다는 것은 라 페루즈가 항해지역을 중심으로 삼아 지도명칭을 표기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주도를 거쳐 동해로 들어오는 길목을 대한해협으로, 일본연안을 거쳐 항해할 때는 일본해로, 타르타르 연안을 항해할 때는 타르타르해협으로 표기하는 식이다.
라 페루즈의 지도는 또 보공디의 1751년 한국해ㆍ일본해 병기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동해를 한국과 일본의 공동소유로 인식했다는 점을 간접으로 알 수 있다. 문제는 라 페루즈의 일본해 표기지도가 향후 지도제작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이후 20, 30년의 혼란이 있었지만 이 지도를 계기로 일본해 표기가 점차 자리잡고 한국해는 지금의 동중국해로 이동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한국해 표기가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동중국해로 이동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한국해 표기전통이 지도 제작자들 사이에 그만큼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당시 지도 제작자들은 지금의 남중국해를 중국해로, 동중국해를 한국해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함으로써 동북아 3국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돈수ㆍ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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