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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리 소리의 고향/김동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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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리 소리의 고향/김동준 지음

입력
2004.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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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의 고향김동준 지음/범우사 발행/1만2,000원

맨 땅 한 뼘, 풀 한 포기 만나기 힘든 도심 한 복판이 아니라면 한 여름에 게으름 피우는 사람의 아침 단잠을 깨우는 단골은 매미소리다. 귀뚜라미 소리를 듣고서야 초저녁 바람 서늘해진 줄 새삼 느끼고, 가을이 성큼 문 앞에 와 있는 줄 안다. 듣기 힘들게 됐지만 한 밤의 다듬이 소리, 밤참장수 소리, 동네 상여 소리는 또 얼마나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가.

시조시인 김동준 동국대 명예교수가 쓴 ‘우리 소리의 고향’은 20, 30년도 더 전 아직 도시화가 덜 됐을 시절 농촌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 가운데 100가지를 이런 저런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놓은 책이다.

유복하지 못한 형편으로 농촌에서 자라며 마치 김치, 된장이 혀에 배 듯 귀에 맛들어 버린 소리,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이 ‘잔잔한 추억이나 향수로 차올라 마음 두근거리게 하는’ 그런 소리다. 소리에 얽힌 체험뿐 아니라 풍경, 부엉이, 디딜방아, 문풍지 등 소리를 내는 물건이나 동물을 백과사전식으로 소개하고, 그에 얽힌 고전 시가 등 문학작품들을 다양하게 인용해 정갈한 문체로 담아냈다.

저자가 ‘한 철을 듣고 세 철을 생각하여도 정겹기만 하다’고 한 건 매미소리다. 옛 사람들은 매미에게 오덕(五德)이 있다고 했는데 머리에 반문(斑紋)이 있고 모양새가 관의 끈이 늘어졌다고 해서 ‘문(文)’, 이슬을 마시고 사니 ‘청(淸)’, 곡식을 먹지 않는 것은 ‘염(廉)’, 집을 짓고 살지 않는 것은 ‘검(儉)’, 계절을 지키는 것은 ‘신(信)’이다. 벼슬아치들의 덕목이기도 하다.

대나무는 흔히 선비들의 이성이나 지조를 상징하지만, 대바람 소리는 대나무의 그 견고함을 ‘살가운 감성’으로 중화시켜 주는 소리라고 저자는 말한다. 바람따라 댓잎끼리 부딪치고 가지끼리 스치면서 나는 소리는 계절마다 소리가 다르다. 봄에는 귓전을 간지럽히는 ‘살랑 살랑’, 여름날은 거친 숨소리처럼 ‘후득 후득’, 겨울에는 칼질 하듯 ‘사각 사각’한단다.

이런 자연의 소리는 장소만 찾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지만, 거의 듣기 힘들어진 소리도 적지 않다. 기차 화통 소리, 도리깨질 소리, 절구질 소리, 밤참 장수 소리, 문풍지 소리, 서당의 글 읽는 소리 등이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걸치고 등잔불 앞에서 ‘춘향전’이며 ‘장화홍련전’을 가락을 얹어 읽고, 어린 손자는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눈을 감았다 떴다 뒤척인다.’ 까무룩 잠들지 않고 어떻게든 참고 깨어 있으면 그 밤이 ‘재수 좋은 밤’이라는 신호가 온다. “찹알떡~”

‘현대문명이 소리를 추방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생활 속의 어떤 소리가 또 다른 소리로 대체되는 현상도 꼬집었다. 풍성한 자연음이 단조로운 기계음으로, 사람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던 갖은 소리가 전자식 음향으로, 그 많던 아날로그 음들이 디지털 소리로 대체되고 있다. 더불어 그리 멀지 않은 옛적에 ‘소리와 소리 사이에서 길어진 침묵’도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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