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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해약하는 사회/ 서민층 청약부금 7만계좌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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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해약하는 사회/ 서민층 청약부금 7만계좌 감소

입력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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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은행 지점. 주부 A(31)씨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4년 넘게 부어온 청약부금을 해약하러 왔다. A씨는 "당장 먹고 사는 게 더 급한데 집은 무슨 집이냐"며 "아파트에 당첨이 돼도 계약금 낼 돈도 없으니 통장은 있으나 마나"라고 고개를 저었다. A씨는 월 10만∼20만원씩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넣어뒀던 300여만원을 받아들고는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의 터널을 지나는 사이, 서민들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희망의 끈마저 놓아버리고 있다. 아무리 생활이 힘들어도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줄 수단이라며 포기하지 않았던 청약통장을 해약하는 서민들이 급증하는가 하면 암보험이나 상해보험 등 보장성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에겐 몸이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을 찾는 일조차 '사치'가 됐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서민들이 주로 가입하는 청약부금 가입자 수가 올 들어 7만계좌나 감소했다. 아파트 가격 급등세를 타고 좀처럼 증가세가 멈추지 않던 것이 2002년 이후 점차 둔해져 작년 말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청약예금 가입자 수도 올 들어 4만계좌 증가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20만계좌 증가)에 비해 증가세가 눈에 띄게 둔해졌다.

신규가입자가 느는 만큼 해약자도 적지 않다는 것이 은행측 설명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청약통장의 효용성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며 "살기가 힘들어 통장을 깨는 경우가 늘어난 탓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이 은행 상계지점의 한 직원은 "작년만 해도 하루 1명 정도 해약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요즘은 하루에 3∼4명씩이나 된다"며 "해약을 만류하기도 하지만 '카드빚 갚는 게 먼저다', '우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분들이 많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구로구 고척동의 한 은행 직원은 "청약통장을 해지하러 온 분들이 '이제 집 살 꿈은 접었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점점 희망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직장인 임모(32)씨는 2000년 6월부터 매달 3만9,000원씩 넣어온 암보험을 지난달 해약했다. 담당 보험설계사가 "나중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설득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임씨는 "맞벌이 하던 아내가 직장을 그만둬 가능한 모든 지출을 줄이고 있다"며 "지금 같아서는 미래를 대비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 대한 교보 등 생명보험 상위 3개사의 경우 보험료를 못내 효력이 상실되거나 해약한 건수가 6월 한 달간 45만5,999건에 달해 4월(39만8,946건)에 비해 15%나 증가했다.

치료비가 부담돼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늘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치과를 운영하는 김현창(34) 원장은 "최근에 어금니가 없어 음식도 제대로 못 드시는 할아버지가 찾아왔는데 치료비를 듣고 돌아가서는 소식이 없다"며 "치료가 시급한데도 비용을 물어본 후 다시 오지 않는 분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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