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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4>멕시코-③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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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민주화의 현장-21세기 남미를 가다]<4>멕시코-③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치

입력
2004.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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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대통령제도혁명당 정권 71년 동안 대통령은 무소불위였고, 6년의 단임 동안 '살아있는 신'이었다. 대통령의 권력은 초헌법적이었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자신의 후임까지 지명할 수 있었기에 임기 중의 부정부패나 권한 남용은 그냥 덮어졌다. 그랬기에 제도혁명당 71년의 장기집권을 끝낸 2000년 7월2일의 선거를 보고 외신들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최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한 '변화의 정부' 비센테 폭스 대통령에 대한 내외의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낙담하고 있다.

코카콜라 사장을 지낸 CEO 대통령은 연간 7%의 성장률과 50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평균 성장률은 1% 미만이었고, 일자리는 210만개나 사라졌다. 그럼에도 폭스 대통령은 "멕시코인들은 멋진 나라에 살고 있다"고 강변한다. 대통령의 미사여구의 언변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기에 카툰 작가들은 긴 코의 피노키오 대통령을 그린다.

폭스 대통령은 부인 때문에도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영부인 마르따 사아군은 현재 여당 측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정치인으로 대선에 대한 꿈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대통령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재벌들로부터 기금을 갹출 받아 자선재단 '바모스 멕시코'를 꾸렸고, 에비타를 흉내 내어 빈민 아동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선사업이라고 하지만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처사였고,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린 사업이었다. 여론의 압박과 여당 내부의 집단적 반발에 밀려 그녀는 "대선에 대한 꿈을 접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녀가 정치적 야망을 진정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여소야대의 어려움

물론 폭스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에다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여당의 개혁안의 발목을 잡는 여소야대의 정치구도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원의석의 분포를 보면 여당인 국민행동당은 151석인 데 반해 야당인 제도혁명당은 222석, 중도좌파인 민주혁명당은 95석을 가지고 있어 집권여당과 정부의 어떤 법안도 통과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하반기 임기 중에도 여당의 구조개혁 법안이 쉽게 처리되지 않을 것이다.

세수 증대를 위한 세제 개혁,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모색하는 노동법 개혁, 민간부문의 투자를 유치하는 에너지 부문의 개혁, 재정적자를 줄일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건만 야당들은 별로 협조할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최근 높은 시세를 유지하는 원유 가격에 의존해 재정을 근근이 꾸리는 형편이다. 고용창출과 경기부양을 위한 공공사업은 엄두도 못 낸다.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주는 인프라, 교육 부문에 대한 투자는 사실상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그나마 민주화의 성과라 치부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는 덮어졌던 부패 스캔들이 지금은 까발려지고 있다는 점. 2000년 대선 당시 있었던 선거자금 스캔들이 2003년 3월부터 불거져 나와 연방선관위(IFE)가 조사하고 고발한 것이 최초의 성과였다. 이에 따라 제도혁명당이 신고하지 않은 선거비용 10억 페소 가운데 5억 페소가 석유공사 노조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몇 달 뒤 선관위는 여당인 국민행동당 역시 2억5,000만 페소의 기장 누락을 밝혀냈고, 이 돈이 폭스 후보 지원단체인 '아미고스 데 폭스'에서 나온 것임을 확인했다. 양당 모두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만 했다.

끊이지 않는 수뢰 스캔들

2004년에 들어와서는 주로 야당의 수뢰 스캔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올해 2월 말부터 멕시코 정국은 '비디오' 시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월에는 녹색당의 상원의원으로, 당수직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청년 정치인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카리브 연안 휴양지 개발이권을 주는 대가로 200만 달러를 요구한 대화 내용이 비디오로 공개되었다. 소위 "녹색당 아들"(니뇨 베르데) 사건이 터졌다. 사람들은 녹색당이 여당과의 연합노선을 포기하고 야당인 제도혁명당과 연대하기로 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이 사건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중도좌파 야당이 이끌고 있는 멕시코시티 시정부의 재무국장이 라스베이거스에서 거액의 도박을 하고 있는 모습이 비디오로 잡혔다. 출처 불명의 돈으로 그가 구입한 아파트는 다섯 채나 되었다. "블랙 잭" 폰세 국장은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로페스 오브라도르 시장의 오른팔이었다. 청렴하다고 알려진 시장에겐 악몽이었다. 이 당시 그는 2006년 대선가도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85%의 지지도를 누리고 있었다. 이 사건 다음날 이 당의 멕시코시티 지부장이 건설업자로부터 여러 차례 달러 뭉치를 전달 받는 모습이 또 비디오로 공개되었다. 중도좌파 정당의 정치인들도 부패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제도혁명당 71년간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부예산 바깥에서 살면 불행한 인생"이란 말이 나돌던 시절이었다. 6년 단임제의 마지막 해는 모두가 국가의 재물을 포식하고 약탈하는 한 해였다. 정경유착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했다.

드디어 정치자금에 대한 수많은 게이트, 스캔들이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했다. 폭스 정부도 정보공개법과 정보공개청(IFAI)을 통해 투명성 제고에 노력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속도는 더디다. 제도혁명당이 권좌에서 물러났지만 과거는 여전히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객원 연구위원

협찬:삼성전자

■멕시코 대표적 정치학자 메이예르 교수 인터뷰

대학원 중심대학인 콜레히오 데 멕시코의 로렌소 메이예르(사진) 교수는 저명한 칼럼니스트이자 멕시코를 대표하는 정치학자이다.

제도혁명당의 장기집권 시절에 날카로운 비판의 필봉을 휘둘렀고 정권교체를 이룩한 폭스 행정부에 환호했다. 하지만 '변화의 정부' 3년이 지난 지금 "변한 게 거의 없다"며 낙담한다.

―폭스 정부 3년을 평가한다면.

"선거로 인해 정권교체가 일어난 게 가장 큰 변화이다. 하지만 지난 3년간을 보면 대통령이 바뀐 것 외에는 제도혁명당 시절 그대로이다. 대선 당시 멕시코인들은 이것 이상을 원했다. 신정권이 들어선 이후 과거 권위주의 체제의 산물인 사법 및 정치구조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소야대를 택했고, 이 국면에서 변화는 어렵게 되었다."

―정치개혁 노력은 없었나. 요즘 여당과 야당 가리지 않고 스캔들이 터져 나오는데.

"멕시코의 정당들은 일종의 비즈니스이다. 막대한 자금이 정당에 유입되기 때문에 부정부패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다. 현재 상·하원은 3개 정당이 점령하고 있다. 이들은 수혜자이기 때문에 상황변화에 저항한다. 2003년만 해도 각 정당의 선거비용의 국고보조가 5억 달러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국고보조금을 대폭 줄일 것을 요구하고 정치권에서도 선거운동 기간 축소, 지원금 감축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정치부패 스캔들에 대한 수사는 없는가.

"폭스 정부도 부패근절을 세제개혁보다 중시한다. 하지만 부정부패의 '대어'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멕시코의 현 사법부로는 부패 스캔들을 파헤치고 책임자를 물색해 처벌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현 사법구조는 과거 정권 시절 그대로이고, 이는 부정부패 연루자를 처벌하기보다는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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