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2년 8월5일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제1차 폴란드 분할이 이뤄졌다. 단속적 독립 기간을 제외하고 제2차세계 대전 종전까지 이어질 기다란 폴란드 분할 시대의 막이 열린 것이다. 제1차 분할의 계기는 러시아 예카테리나2세의 후원으로 즉위한 폴란드 왕 스타니슬라프스키와 이 나라의 전통적 귀족계급 슐라흐타 사이의 반목에서 주어졌다. 몇몇 귀족가문의 반란이 초래한 폴란드의 무정부상태를 바로잡겠다며 예카테리나2세가 출병 움직임을 보이자,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2세는 러시아가 폴란드를 독차지하게 될 것을 염려해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를 끌어들여 폴란드 분할을 시도했다.제1차 분할의 결과로 러시아는 벨로루시 일부를, 프로이센은 서프로이센을, 오스트리아는 갈리치아를 얻었다. 분할에 맞서 폴란드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일었지만, 프로이센·러시아에 의한 1793년의 2차 분할과 1795년의 3차 분할을 통해 폴란드는 유럽 지도에서 사라졌다. 나폴레옹전쟁기인 1807년부터 1815년 사이에 바르샤바공국이라는 이름으로 명목상의 독립을 유지한 것을 빼면, 폴란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세 나라의 지배 아래 있었다. 해서, 쇼팽이나 마리 퀴리에게 조국은 늘 서러웠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폴란드는 독립을 유지했지만, 1939년 9월 나치스 독일의 침공과 이에 대한 소련의 맞대응으로 다시 독일과 소련에 분할 점령되었다. 임시정부가 파리를 거쳐 런던으로 망명해 있던 전쟁 기간 동안 독일 점령지역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상징되는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다. 전쟁이 끝난 뒤 정해진 지금의 국경선은 폴란드의 역사적 영토보다 사뭇 서쪽으로 옮겨졌다. 소련이 폴란드 동부 영토 일부를 자국에 편입시키는 대가로 독일 동부 영토 일부를 폴란드로 편입시킨 탓이다. 폴란드는 어쩐지 한국을 닮았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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