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가라테의 창시자 최배달(본명 최영의ㆍ1922~1994)의 장남 최광범(30ㆍ명지병원 정형외과 레지던트)씨가 기자에게 들려준 에피소드 하나.한 일본 무술인이 그 깨기 힘들다는 빨간 벽돌 2장을 포개 놓고 주먹으로 가격, 보기 좋게 두 동강을 냈다. 이번에는 최배달 차례. 그런데 웬일인지 1장만 깨겠다고 말했다. 일본인의 비웃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배달은 벽돌을 두 손으로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는 휙 비틀어 박살을 냈다.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는 이런 최배달의 청년시절을 다룬 만큼, 그의 가공할 액션을 어떻게 그려내는가가 관람 포인트. 이 점만 본다면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일본으로 건너간 최배달(양동근). 그가 일본인에 얻어터지다 결국 입산 수도에 돌입, 18개월 후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하산하면서 영화는 빛나기 시작한다.
일본 전국 곳곳의 가라테, 유도, 검도 도장을 돌아다니며 최고수에 도전장을 내미는 이른바 ‘도장 깨기’에 나서면서부터 최배달은 관객이 기대했던 최배달이 되는 것이다.
영화로 드러난 최배달 무술의 가장 큰 특징은 일격필살. 자신도 여러 번 맞지만 무지막지한 파괴력이 담긴 주먹이나 발차기 한방으로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모습이 압권이다.
화려한 리롄제(이연걸)의 액션보다는, ‘옹박-무에타이의 후예’에서 보여준 토니 자의 단순하고 우직한 액션에 가까운 편. 최배달의 도장 깨기에 격분한 전 일본 무도계가 30명의 고수를 불러모아 맞섰다는 ‘무사시노 벌판의 대결’도 꽤나 볼만하다.
그러나 영화의 드라마적 감동은 범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일본인 게이샤 요코(히라야마 아야)와의 로맨스, 조센진으로 멸시 받으며 살아야 했던 동시대 한국인들의 아픔 등이 액션의 감동에 비해 너무 약하다. 본격 액션 신을 앞둔 평범한 시대극 수준이다.
양동근 특유의 중얼중얼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대사처리나 흐느적거리는 몸 동작도 무술인 최배달의 배역으로는 치명적 약점. 그럼에도 영화는 최고가 되기 위해 외길을 갔던 한 ‘사나이’를 부각시킨 것만으로도 이 모든 결점을 뛰어 넘는다.
특히 최배달이 싸움을 앞두고 두려움 때문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이나 빠졌다는 내용은 신화 속 최배달이 아닌, ‘인간 최배달’을 드러내게 한 이 영화의 미덕.
‘죽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싸움에서 져 불구자가 되는 게 두려웠다’는 독백은 분명 울림이 있다. 결국 영화 ‘넘버3’에서 송강호가 언급한 최배달의 ‘무대뽀 정신’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다. “황소 앞에 서는 거야. 그냥 앞에 딱 서. 너 소냐? 나 최영의야!…” 12세관람가. 13일 개봉.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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