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스포츠 라운지/자유형 50,000m 류윤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스포츠 라운지/자유형 50,000m 류윤지

입력
2004.08.05 00:00
0 0

우리의 ‘인어공주’는 목이 잔뜩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쉽게 붓는 편도선이 고된 훈련 탓인지 가라앉을 줄 모른다”고 했다.“수영중독”이라고 자신을 소개할 만큼 좋아하는 수영을 국가대표로 뽑혀 원없이 하게 됐는데 “무슨 앓는 소리냐”고 하겠지만 올림픽 대비훈련은 19세 소녀가 감당하기엔 모질고 거칠다. 게다가 주위의 기대가 눈덩이가 돼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3일 태릉선수촌 수영장. 마사지를 받은 인어공주 류윤지(19ㆍ서울대 체육교육과1)가 곧장 풀로 뛰어든다.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도 열심히 물살을 헤치고 있다. 양손엔 ‘패들’을, 다리사이엔 ‘풀 보이’를 끼웠다. 물 저항을 최대하기 위해, 몸의 기우뚱거림을 최소화 하기 위한 훈련이다.

아테네올림픽 수영대표 22명 중 여자 자유형 50m와 100m에 출전하는 윤지에게 거는 기대가 유독 크다. 168㎝, 54㎏의 균형 잡힌 몸매에 타고난 유연성, 안정된 영법, 정확한 스타트와 매끄러운 턴을 독점하고 있는 윤지가 한국 수영사에 새 장을 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1964)에 첫 출전한 이래 한국수영의 40년 묵은 꿈은 메달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세계에서 ‘난다 긴다’는 8명이 최후의 승부를 펼치는 결선(파이널)에 진출하는 것이다.

“꿈이 초라하다”고 묻는다면 수영에 관심이 없거나, 문외한이다. 지금껏 한국이 수영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은 2000시드니에서 구효진이 기록한 여자 평영 200m 11위다. 한국수영의 대명사처럼 회자되는 조오련, 최윤희도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땄지만 올림픽에선 결선에도 진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커다란 목표’를 잡았는데도 관심은커녕 코방귀만 끼고 있으니 서운할 수 밖에 없다. “최고라고 자부하는 100여명이 실력을 겨루는 올림픽에서 8명 안에 드는 건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아시안게임, 하다못해 지역대회에서 금메달이라도 따야 비로소 알아주는 현실이니 기본종목이 죽어나가는 겁니다.” 김봉조 감독의 말이다.

사실 윤지도 지난해까진 무명에 가까웠다. 부산아시안게임 계영 4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그때 뿐이었다. 메달이나 성공에 매여 수영을 했다면 벌써 제풀에 지쳤겠지만 윤지는 그냥 물이 좋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영을 시작했는데 부모님 따라 미국 가는 바람에 그만뒀어요. 중2때 돌아왔는데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거든요. 그러다 문득 물이 저를 불렀어요.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풍덩~.”

윤지는 “물을 좋아한 만큼 열심히 물에서 살았어요. 부담이 없으니까 연습한대로 기록이 나오더군요”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기록이 나아지고 어느날 국가대표가 됐다. 수영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공부도 했다. ‘주영야독(晝泳夜讀)’ 덕에 올해 서울대에 입학했다.

꾸준한 노력과 수영 사랑은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최다관왕인 5관왕을 차지하며 빛을 발했다. 덕분에 ‘인어공주’ ‘수영 얼짱’이란 별명을 얻었다. 자신감까지 덤으로 얻은 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 자유형 100m에서 한국기록(55초71)을 세우고, 국제수영연맹(FINA) 대전 경영월드컵에서 은메달까지 땄다.

올해 4월엔 다시 자유형 100m 한국기록(55초46)을 작성하며 올림픽기준 A기록(55초6)을 넘어 아테네 티켓을 따냈다. 물이 오른 탓인지 6월엔 주종목이 아닌 접영 50m 한국기록도 갈아치웠다.

일취월장하고 있는 윤지에게 수영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작 윤지는 담담하다. “8강 진입을 목표로 잡긴 했는데 신경 안 쓸래요. 부담을 갖는 것보다 편한 마음으로 수영할 때 기록이 더 잘나와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연습은 누구보다 독하게 했다. 얼굴이고 몸이고 가릴 것 없이 새카맣게 탔다. 지붕 없는 수영장에서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에 대비하느라 한달 동안 사이판 전지훈련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여자 자유형 100m 세계기록은 53초66. 윤지는 1.8초 뒤져있다. ‘똑딱 똑딱’ 하면 사라지는 찰나의 시간이지만 윤지에겐 영겁보다 길다. 그 작은 차이를 줄이기 위해 오늘도 하루종일 물 속에서 산다. “수영은 뿌린 대로 거두는 정직하고 깨끗한 종목이니까요.”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