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도입을 추진중인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한국영화는 스크린쿼터제 아래서 지속적인 성장을 밟아오며 지난해 시장점유율 50%에 육박했고, 올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1,000만 관객시대를 여는 등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다.하지만 전국 스크린 수 1,271개 중 '태극기 휘날리며'가 518개를 점유하는 등 싹쓸이를 하는 그늘에서 소규모 영화들은 개봉관조차 제대로 잡지 못해 다양성이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때문에 스크린쿼터 제도가 문화주권 등 애초의 취지와 달리 대자본의 할리우드식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만 보호하는 제도라는 비아냥도 나왔다.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이 같은 거대 상업영화의 독식을 막고 저예산의 작품성 있는 영화들을 제도적으로 보호해 한국영화 시장의 편식현상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마이너리티 쿼터와 스크린 쿼터 축소의 연동 여부다. 우리당은 공식적으로는 "스크린 쿼터 축소를 전제로 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스크린 쿼터로 보호 받고 있는 한국영화계가 상당한 재정 지원을 동반하는 마이너리티 쿼터라는 혜택까지 동시에 받으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마이너리티 쿼터가 미국과의 통상교섭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스크린쿼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상적 차원에서 나온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과 미국은 올해 안에 한미투자협정(BIT)을 타결 짓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키로 했지만, 미국측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요구하고 있어 난항을 거듭해왔다. 영화계와 재계 양측의 요구에 대한 타협안이 스크린 쿼터를 축소하는 대신 문화 주권과 문화 다양성을 보장하는 마이너리티 쿼터제 도입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연동안은 이미 당·정·청간에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영화계의 선택이 이 제도의 향배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 스크린쿼터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너쿼터를 포기하고 메이저 자본 중심의 스크린쿼터제를 사수할 지, 아니면 문화 다양성과 문화 주권을 중심으로 한 마이너리티 쿼터제를 받아들일지의 여부다. 두가지 모두를 요구한다면 '영화계의 밥그릇 불리기'라는 여론의 비난이 불가피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영화계 "다양성 내세운 꼼수" 반발
영화계에서는 마이너리티 쿼터제가 궁극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를 전제로 한 '저열한 꼼수'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행 스크린쿼터는 국내 메이저 영화만을 위한 보호장치'라는 영화계 내부비판을 이용해 저예산·독립·예술영화 등 소위 '작은 영화' 지원을 통한 명분도 얻으면서 마이너리티 쿼터에 할당된 상영일수만큼 스크린쿼터를 줄이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지키기 영화인대책위' 등 영화계가 파악하고 있는 정부의 마이너리티 쿼터제 방안은 실제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인 106일(146일에서 각종 경감조치로 줄어든 일수를 뺀 것)을 86일로 축소, 미국측 요구(73일)를 어느 정도 만족시켜주면서 줄어든 20일을 예술영화에 할애하자는 것. 이에 비해 영화계가 논의 중인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현행 106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중에서 20일을 한국 예술영화에, 나머지 상영일수(259일) 중에서 20일을 외국 예술영화에 각각 할당하자는 것이다.
영화제작사 마술피리의 오기민 대표는 "마이너리티 쿼터제를 포함한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문화다양성 문제제기는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6월 스크린쿼터 축소 발언 때 함께 언급됐던 것"이라며 "이같은 맥락에 비춰볼 때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영 스크린쿼터문화연대 국제통상고문(한신대 교수)는 "최근 열린우리당이 독립영화협의회에 '스크린쿼터 축소에 동의해주면 독립영화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취지의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번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문화다양성 지원을 미끼로 영화인들을 분열시켜 스크린쿼터를 축소시키려는, 독재정권시절에나 사용됐던 비열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스크린쿼터 축소와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에 따른 마이너리티 쿼터제의 실효성 여부에 대해서도 영화계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설사 마이너리티 쿼터제가 도입돼 극장손실분을 영화진흥기금으로 보전해주더라도 BIT가 체결되면 정부보조금은 일체 지원할 수 없게 된다"며 "마이너리티 쿼터제는 결국 1, 2년 내에 사라질 지원금을 내건 기만책"이라고 주장했다.
영화계는 현행 스크린쿼터 틀 내에서 마이너리티 쿼터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예술·독립영화 전용관 설립 등을 통한 실질적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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