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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역사의 적반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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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역사의 적반하장

입력
2004.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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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과 2항이다. 즉,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최근 한나라당이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가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훼손하고 나라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헌법 제 1조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한 나라에서 헌법 제 1조보다 중요한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국체를 자유민주주의라고들 이야기하지만 자유민주주의 역시 헌법 제 1조의 민주공화정을 구체화시켜서 표현한 것에 불과하며 상위 규정은 역시 헌법 제 1조의 민주공화정이다.

그러면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두 개의 역사적 전통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역대 독재정권, 그리고 일부 수구언론들의 인식으로서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의 적은 공산주의이기 때문에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자신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대표하며 이에 대한 저항은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도전이라는 인식이다. 노무현 정부의 일부 정책과 과거사 청산 작업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박근혜 체제 하의 한나라당의 대응은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정확히 이 같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다른 하나의 전통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 등이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다. 이는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며 진정한 의미에서 국민들이 권력의 주체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상, 표현, 집회의 자유 등 다양한 기본권이 보장되는 정치체제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의 적인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국민들을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시녀로 전락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해 온 역대 독재정권들은 민주공화정이나 자유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극우반공체제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현재로 보자면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의 입장이 이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이 둘 중 정답은 후자이다. 정치학 교과서만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란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고 자신들이 국가의 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특정한 사상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정치체제가 결코 아니다. 따라서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해 온 것은 공산혁명의 누명 속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조봉암 등이 아니라 정반대로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해 온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극우독재자들이다.

사실 사법부도 전두환 일당의 12·12 군사변란과 5·18 광주 학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림으로써 이 같은 입장을 확인해 준 바 있다. 입법부 역시 민주화 운동 보상법을 통해 절충적이지만 최소한 1969년 3선 개헌 이후의 정치체제의 경우 자유민주주의라는 우리의 국가정체성을 훼손한 정권이었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한마디로 1987년 이전의 우리의 정권사는 국가정체성 훼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국가정체성은 오히려 반정부 민주화 운동 속에서 구현되어 왔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한나라당의 국가정체성 훼손론이야말로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초해 민주공화정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또 다시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 같은 이러한 역사의 적반하장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손호철/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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