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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77>부르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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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77>부르기바

입력
2004.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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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8월3일 북아프리카 튀니지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하비브 부르기바가 알무나스티르에서 태어났다. 2000년 졸(卒). 부르기바의 정치적 업적은 흔히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의 세속주의 노선에 비교된다. 부르기바는 케말처럼 정치에 대한 종교의 영향을 크게 줄였고, 사회·경제 생활과 결혼 생활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켰다. 그러나 노쇠한 제국의 청년장교와 식민지의 청년지식인은 정치에 입문하는 과정이 크게 달랐다. 케말이 군사지도자로서 공훈을 세우며 정치적 기반을 닦은 데 비해, 부르기바는 식민 본국 프랑스에서 교육을 받은 뒤 언론인으로서 독립 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1956년 튀니지가 입헌군주제 국가로 독립하기까지 부르기바의 거처는 거리 아니면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는 격렬한 무장투쟁보다는 외교 공세와 타협을 통한 독립을 모색했고, 그것이 프랑스로 하여금 튀니지 독립운동 지도자들 가운데 그를 협상 파트너로 고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부르기바는 독립 튀니지의 초대 총리가 되었다. 그는 이듬해 입헌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선포한 뒤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1975년에는 의회로부터 종신 대통령직을 부여받았다.

국내적으로 온건한 독재자였던 부르기바는 대외적으로도 아랍세계 일반의 대(對)이스라엘 적대정책과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었고, 미국과 밀접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고령과 경제사정 악화로 이 종신대통령의 권력 기반은 서서히 잠식됐고, 그는 1987년 11월 자신이 막 임명한 총리 벤 알리의 무혈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났다. 그 때 나이가 이미 84세였고 40년 이상 최고권력자로 있었으니 권력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 테지만, 부르기바는 세 해 뒤 동맥경화로 죽기까지 고향 집에 연금돼 있는 동안 새 권력자에 대한 저주를 되풀이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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