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잘났다고 통 큰 척 하잖아. 하지만 작은 걸로 삐치거든.”지난 90년대 말끔한 귀공자 스타일로 브라운관을 누볐던 정보석(42). 막상 만나 보니 머리를 파마한 것도, 오렌지색 티셔츠도 우스꽝스럽다. 헬스로 단련한 가슴과 근육은 20대 운동선수 같다.
“발악하는 거지.” 시원시원한 말투가 담백하고 소박하다. 누가 이 사람을 교수 겸 중견배우라 하겠는가. “날씨도 덥고 땀이 눈에 들어 가서 처음으로 파마를 해봤는데 관리가 힘드네요.”
연극 ‘아트’(Artㆍ연출 황재헌)는 그에겐 ‘줄리어스 시저’ 이후 11년 만의 무대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교수 규태와 의사 수현, 문방구 주인 덕수가 ‘작은 걸로 삐치는’ 얘기다. 별스러울 것도 없는데 무척 웃기고, 한편으로는 진지하다. 마치 나이도 신분도 짐작할 수 없는 정보석의 외모만큼이나. ‘오! 수정’에서 보여준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캐릭터 덕분일까.
‘아트’ 에서 그는 대학교수 규태를 맡았다. 의사인 친구 수현(이남희)이 1억8,000만원 하는 그림을 사자 입에 거품을 물고 욕하는 역이다. 그를 잠시 진정시키고 이 연극의 재미를 물었다. “남자끼리 짐짓 아닌 척 점잖은 척하는 이면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니까.”
욕을 하는 쪽보다 그림을 사서 욕을 먹는 역이 어울리지 않았을까. ‘오! 수정’이나 TV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의 철없는 귀공자처럼 말이다. “세 인물 모두가 내 자신이 아닐까 착각할 수 있는 인물”이고 대답했다. “저만해도 깍쟁이 같은 수현, 열혈남아 규태, 거기에 덕수도 제 안에서 산다구요.”
오히려 미지근한 성격으로 두 친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덕수(유연수) 역이 더 욕심이 났다고 한다. “규태는 단순하고 직선적이죠. 요즘엔 오히려 이런 걸 쿨하다고 하대.” 남자들끼리의 진한 우정 뒤에 숨은 이기심과 질투를 폭로한 야스미나 레자의 원작은 바로 이 사람을 두고 쓴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연극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방송을 쭉 하다 보니 큰 호흡을 쓸 일이 없으니까, 표현과 소리도 작아지고 답답해졌죠. 연극은 배우의 생명력을 길러줍니다.” 고정된 듯한 자신의 캐릭터에 파격을 주고도 싶었다. “연기 패턴을 바꾼 게 홍상수 감독의 ‘오! 수정’이었죠.
의도적으로 ‘여고시절’ 같은 시트콤도 했는데 그 전의 제 이미지를 좋아한 분들에게는 욕도 먹었어요.” 연극은 그 ‘파격’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부담도 작지 않다. “이남희 유연수 두 배우가 너무 탄탄해서 긴장하게 되죠. 따라잡아야 할 텐데, 앙상블이나 깨뜨리지 말아야지 하는 걱정도 되고.”
대학원에서 졸업논문 쓰랴, TV 드라마 ‘명동백작’ 촬영하랴, 수원여대 제자들이 참가한 연극제 봐주랴 빡빡한 일정을 보냈지만 그는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만약 정말 사고 싶은 그림이 1억8,000만원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무리해서라도 갖고 싶은 건 꼭 산다”고 했다.
19일~10월3일 학전블루소극장. 정보석 이남희 유연수는 화ㆍ목ㆍ토요일, 권해효 조희봉 이대연은 수ㆍ금ㆍ일요일에 나와 대학로를 누비는 40대 남자 스타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02)764-8760
/이종도기자 ecr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