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 사의를 표명한 지 이틀만에 청와대가 윤증현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를 후임에 내정, '윤증현 역할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체제 개편이 현안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청와대가 '윤증현 카드'를 꺼낸 것은 강력한 추진력으로 현 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고 있다.옛 재무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하다 외환 위기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으로 환란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윤 내정자는 현재 금융감독위와 금융감독원 체제를 탄생시킨 산파역.
게다가 금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데다 부하 직원들의 신망이 높고, 추진력도 뛰어나 '뜨거운 감자'인 감독체제 개편을 원만하게 수습할 것이란 기대가 많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로 금융계와 정·재계에 폭 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번 인사가 있기 전까지는 통합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윤 내정자가 재경부 출신임을 의식한 금융감독원 노조는 "환란의 책임자이자 전형적인 재무 관료를 낙하산식으로 내정한 것은 금융감독 업무의 중립성을 저해하는 시대역행적 인사"라며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윤 내정자는 2일 기자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의 복잡한 상황을 의식한 듯 "금융감독체제 개편과 관련한 역할론이 나돌고 있지만 억측에 불과하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황을 파악한 뒤 감독기구 개편과 관련한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해 정부조직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도 협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내정자는 또 환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에 대해 "정식 임명 절차를 밟게 되면 그때 이야기 하겠다"고 답변을 유보했으나 "ADB 이사로 필리핀에 있으면서도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국내 뉴스를 챙겼고, 업무차 자주 국내를 방문해 (장기간 국내 공백이)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눈물떨군 이정재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 여러 모로 부족한 본인이…." 예의 침착함으로 이임사를 읽어 내려가던 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감위원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그의 안경 너머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감정이 북받치는 듯 중간중간 말을 잇지 못했다. 2일 오후 여의도 금감원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 위원장은 착잡한 심경을 억제하기 어려운 듯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최근 카드 사태의 책임과 감독기구의 개편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모든 책임과 비난은 제가 지고 떠나겠다"고 퇴임 소회를 밝혔다. 이 위원장은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우리 조직의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모두 지고 가고, 공로는 여러분께 남겨드리고 싶다"고 거듭 직원들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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