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 금융감독기구 개편에 대한 부담 등으로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향후 감독기구 개편을 둘러싼 내홍이 격렬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기능 축소, 금감위 위상 강화'의 방향으로 기구 개편안이 가닥을 잡고 후임 금감위원장이 그 총대를 메게 될 경우, 금감원 내부의 반발은 거세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이 위원장은 사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해 "금감원이 복잡한 사정에 처해있는 것은 기자들이 더 잘 알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감독기구 개편 문제가 사의의 직접적인 배경임을 시사한 것이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1일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와 민간 조직인 금감원의 수장 직을 겸하고 있는 이 위원장으로서는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금감원 노조가 삭발식을 단행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이면서 "새로운 조직이 출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존 조직을 이끌어 온 기관장은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문제는 이 위원장의 사의가 금융감독기구 논란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점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대통령 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감독기구 개편안은 금감위가 재경부로부터 법령 제·개정권을, 금감원에서 감독·조사 업무를 넘겨받는 등 위상이 대폭 강화되는 반면, 금감원은 고유의 검사 업무만 주력하는 것. 혁신위는 당초 개편안 발표 시기를 8월초로 잡았으나 반발이 거세지자 8월말로 늦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감위의 수족(手足)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금감원이 반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혁신위로부터 금감원 모든 부서의 감독·검사 업무 프로세스를 요약해 제출하라는 지시에 대해 금감원 일각에서는 거부 의사를 내비치는 등 집단적인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특히 후임 금감위원장이 조직 개편에 메스를 들이댈 경우 조직 내 갈등은 극에 달할 수 있는 상황. 노조측이 이 위원장 사의 표명 직후 "사의를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성명을 낸 것도 이 같은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사임을 계기로 정부측은 감독기구 개편에 속도를 내고, 금감원 노조측은 반발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돼 양측의 갈등은 더욱 악화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후임 금감위원장 4파전
이 위원장의 전격 사의 표명에 따라 후임 인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후임 금감위원장 자리에 자천, 타천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4명 정도로 압축된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과 윤증현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유지창 산업은행 총재 등이다.
이 부위원장은 참여 정부 '코드'의 핵심에 서 있는 대표적 인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참여 정부 금융개혁의 선봉에 섰고, 최근엔 생명보험사 회계 처리 문제로 거대 재벌인 삼성과 맞서는 뚝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색깔이 지나치게 강해 인화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약점.
이헌재 부총리 입각 당시 금감위원장 교체 후보로 거론된 바 있던 윤 전 이사도 유력한 후보다. 통합거래소 이사장 내정설이 파다하지만, 'U턴'을 시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행시 10회로 옛 재정경제원 등에서 요직을 거친 정통 재무 관료로 무게감과 리더십 면에서는 가장 앞선다는 평이다. 이수성 전 국무총리의 매제로 금융계, 정·재계에 폭 넓은 인맥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장점. 하지만 외환 위기 당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재경원 금융정책실장)에 있었던 인사가 금융감독 수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많다.
행시 14회 동기인 정 전 총재와 유 총재는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금감위 부위원장, 산은 총재 등을 차례로 이어받아 왔다. '관치 인맥'의 뿌리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참여 정부의 금융당국 수장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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