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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친구야 오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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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친구야 오래 살자

입력
2004.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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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었는데, 그들이 꽃 바구니 속에 남기고 간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명수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오래 살아라."

나는 처음에 웃었지만, 곧 눈물이 흘렀다. 오래 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라는 말 속에 담긴 그들의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우리는 가슴 아픈 일들을 겪으며 그 평범한 말의 깊이를 헤아리게 됐다.

우리는 10대 초반 중학교에서 만났다. 단짝 친구라고 하기엔 덤덤한 사이였지만, 우리는 각자 어디에 있든 몇 년을 못 만나든 항상 서로를 친구로 느꼈다. 오십여 년을 그렇게 함께 했으니 우리의 생에서 그 이상 가까운 사람들을 찾기 어렵다.

중고에서 대학까지 죽 반장을 했던 친구는 한평생 모범생으로 살고 있다.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다시 시어머니와 장모로 최선을 다하는 그를 보면 어려서 모범생이 한평생 모범생이구나 깨닫게 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따위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 바르게 사는 것이다. 그는 가끔 나쁜 짓 하는 즐거움을 모른다.

어렸을 때 입바른 말을 못 참는 '얄미운 아이'였던 친구는 지금 '천사표'로 통한다. 그는 결혼 후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상처 받으면서 자신의 입바른 말로 상처 받았을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의 예쁜 얼굴은 어려서나 지금이나 새침데기로 보이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하다.

한 친구가 목사님과 결혼했을 때 우리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신이 훌륭한 설교를 할 때 우리는 놀라곤 한다. 오십여 년 전 우리 옆에 앉아 떠들던 애가 저렇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달 동창 모임에서 그는 기쁜 일 슬픈 일을 당한 수많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다. 자신의 아픈 일들은 내색하지 않은 채.

그 동안 우리에게 많은 일이 일어났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즐거운 날들도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남편을 잃고, 아들을 잃고, 형제들을 잃는 슬픔도 겪었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났다.

단발머리로 만나 이제 60대로 접어든 우리는 각자 자신의 생뿐 아니라 서로의 생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마음을 다해서 겪었다. 행복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불행으로 비틀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십년 이상 키우던 개를 잃었을 때 한 친구가 전화를 해 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이제 아들 잃은 내 마음을 짐작하겠지?"

"어떻게 감히 내 개와 네 아들을 비교하겠니?"

"사랑하는 대상은 다 같지 개라고 다르겠니? 사랑하는 존재는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늘 우리 가슴속에 함께 있단다. 그리고 세월이 약이란다. 너의 남편에게도 내 위로를 전해 다오."

며칠 전 이메일을 열었더니 한 친구가 동창들에게 보낸 글이 있었다.

<…동생의 1주기가 다가옵니다. 지난 13년 동안 어머니 남편 아버지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내며 많이도 울었고 아팠고 쓰라렸습니다. 그런데 아픈 만큼 하늘을 더 쳐다보게 되고, 쳐다본 만큼 하늘이 가까워졌어요. 이제 그곳은 더 이상 멀거나 희미한 곳이 아니라 가깝고 가고 싶고 그리운 곳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아옹다옹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아픔을 통해서 얻은 큰 은혜입니다. 욕심으로 무너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연민을 느낍니다. 우리의 생은 그렇게 소모되어서는 안 되는 참으로 짧고 소중한 것이라고 소리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의 부인 테레사와 부통령 후보 존 에드워즈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각기 전남편과 아들을 잃었는데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 "슬픔을 겪은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돼 있다"고 말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슬픔은 타인을 이해하는 힘을 주고, 그 힘으로 타인을 감동시키고, 그래서 모두에게 은총이 되기도 한다.

오래 오래 살라고 말해 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나는 한마디를 덧붙여서 친구들을 웃기고 싶다. "친구야 오래 살자. 그러나 너무 오래 살지는 말자."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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