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붉은 머리의 미국 병사가 붙잡혀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은 이래 나는 그가 누구였는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나는 그 소식을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들었다. 이 도시는 내가 전쟁 직후 제시카 린치 일병을 치료했던 의사와 병원 관계자를 인터뷰했던 곳이다. 그들은 포로로 잡혔던 린치 일병 구출 작전에 대해 미국 국방부가 사건을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것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미국인에 관한 얘기다.앰뷸런스 운전사인 압둘 하디는 이라크 저항 세력 사담 페다인 민병대에 붙잡혔던 미군 포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포로는 벌거벗겨진 채 묶여 있었고 민병대의 감시를 받으면서 담배를 피웠다. 남자는 머리가 짧고 붉은 색이었고, 다리에 약간의 상처가 있었으며, 열아홉 살 정도로 보였다고 하디는 전했다. 민병대는 포로를 놓아주기는커녕 총과 수류탄으로 위협했으며, 몇 시간 뒤 총살했다.
당시 칼럼에서 이 미국인 포로에 대해 짧게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들은 얘기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갖게 됐다.
한참 뒤 나는 도널드 월터스 하사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됐다. 그는 제시카 린치가 붙잡혔던 바로 그 포격전에서 실종됐고, 나시리야에서 시체가 발견됐다. 그렇지만 내가 이라크에서 들은 포로와는 일부 묘사가 맞지 않았다. 월터스 하사관은 열아홉 살이 아니라 서른세 살이었고, 붉은 머리가 아니라 금발이었다. 나는 오리건 주 세일럼에 사는 월터스 하사관의 부모를 방문했다. 아들의 사진을 보면서 슬픔에 잠겼던 부부는 아들의 머리카락이 붉은 빛이 도는 금발이고, 다리에 상처가 있으며,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 사진 속 젊은이는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국방부는 최근 월터스 부부에게 아들이 붙잡혀 총살당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제시카 린치 일병의 영웅담은 월터스 하사관의 얘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포격전 때 이라크 방송은 금발의 미군 병사가 앞장서서 용기 있게 싸웠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병사가 월터스 하사관임에 틀림없다면서 정부는 올해 훈장을 수여했다. 월터스의 엄호로 부대 동료들은 도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적들의 도시에 홀로 남게 됐고 붙잡혔다. 진정한 영웅은 그때까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경험 많은 군인으로 걸프전에 참전하기도 했던 그는 9·11 테러가 발발하자 이라크 공습에 뛰어들었다. 그의 부친은 "내가 대통령이라면 테러를 멈추지 않을 경우 바그다드에 핵무기 공격을 가하겠다고 이라크를 위협했을 것"이라고 격하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월터스 하사관의 모친에게 아들이 숭고한 목적을 위해 희생됐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어렵지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내 아들뿐만 아니라 많은 장병들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월터스 부부가 겪는 것과 같은 '참을 수 없는 공허함'은 바로 이 전쟁의 대가일 것이다. 이렇듯 평범한 미국의 가정이 전쟁의 짐 중 99.9%를 지고 있다. 이라크 전쟁이 가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도널드 월터스처럼 젊고 용기 있었지만 가버린 사람들의 삶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NYT 칼럼니스트/뉴욕타임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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