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일보와 나]<33>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일보와 나]<33>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

입력
2004.08.02 00:00
0 0

서울올림픽의 함성이 아직 남아있던 1988년 11월 한국일보가 주최한 경부역전마라톤대회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다. 한국일보는 무명에 가까웠던 나를 발굴해 최초로 기사화 함으로써 4년 후 '바르셀로나의 영광'을 예비한 신문이었다.경부역전마라톤은 전국의 건각들이 동계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춥고 고생스러웠지만 개인의 수상보다는 고장의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선후배가 함께 모이는 정이 넘치는 '마라톤 축제'이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그 해 강원도 대표로 참가했다. 각지에서 모인 대학 및 실업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의욕이 넘쳤다.

10여 차례 구간기록을 세우거나 1위로 골인했다. 경부역전마라톤은 오늘 뛰고 그만인 경기가 아니라 다음날 또 뛰어야 하기 때문에 파이팅이 넘치고 체력이 좋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냈다. 선배들은 당시 지칠 줄 모르고 뛰던 나를 '강원도 탱크'라고 불렀다.

'우수 신인 황영조, 나이어린 선수를 출전시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강원팀을 안심시키며 종합 준우승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승부의 고비를 무사히 넘게 한 꿈나무.'(88년 11월 22일자) 전국적인 종합일간지에 내 기사가 나온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기사를 자랑했다. 육상 보도에 소홀했던 당시 분위기에서 한국일보가 내 이야기를 크게 써 준 것은 의외였다. 그 기사는 스크랩으로 남아 내 마라톤 인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자부심과 올림픽 메달을 향한 희망이 솟았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몬주익 고개를 오르며 4년 전에 참가했던 경부역전마라톤을 생각했다. '강원도 탱크'가 여기서 멈출 수 없다는 일념이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순간의 환희와 영광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곧 일본에서 발바닥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슬럼프에 빠졌다. 재기를 다짐하던 나에게 기회를 준 것 또한 한국일보였다. 93년 경부역전마라톤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나는 전구간 우승으로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그 덕분에 이듬해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경부역전마라톤은 내 마라톤 인생의 시작이었으며 어려운 고비마다 나에게 용기를 북돋워 준 자극제였다.

앞으로도 이 대회가 길이 남아서 뛰어난 후배들의 등용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도 경부역전마라톤이 열리는 11월이면 꼬박꼬박 한국일보를 챙겨 읽고 있다. 현장에서 선수를 가르치는 입장이라 경부역전에 참가한 선수들의 구간기록 등을 꼼꼼히 챙겨 데이터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또 다른 나'를 찾아낼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기성 선수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완의 유망주들을 발굴해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도 소중하다. 전국의 건각들이 참가하는 경부역전마라톤, 모든 고교생에게 기회를 개방하는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를 주최하는 한국일보의 배려가 그래서 참 고맙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