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굳이 이정표를 보지 않아도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 그건 산의 주름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주를 지나 원주쯤 접어들어 강원도 특유의 장쾌한 풍광이 나타나면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울창한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공기와 시원하게 흐르는 학교 앞 시냇물은 새로운 기운을 솟게 한다.사람들은 혼자 산속의 폐교 건물에서 밤에 무섭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고 기분이 좋아 오밤중에 자다말고도 벌떡 일어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실실 웃으며 혼자 운동장을 어슬렁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이 주는 선물은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광과 깨끗한 환경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생활과 일에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공급받고 원칙들을 세우는 데 자연의 섭리에서 깨닫는 지혜와 덕목들이 더 절대적인 것이었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만들어 나갈 때, 대범하면서도 세심하고 물 흐르는 듯한 순리를 존중하며 지나친 욕심을 자제하고 항상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하는 것들이 다 그 영향이다.
자연이 늘 평화롭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그 안에도 갈등이 있고 경쟁이 있다. 그러나 결국은 질서와 조화 속에 자리를 잡아 생존의 조건을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배려와 나눔의 중요성도 배운다.
'자연의 영감'을 주제로 하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용평 발왕산 기슭에서 막이 올랐다. 미디어마다 대서특필하고 관객이 객석을 꽉꽉 메우니 기대 이상의 대성공이란다. 하지만 수려한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즐긴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닮은 마음과 충만한 영감을 얻어 두고두고 간직할 때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선철 공연음반 기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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