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에이즈 양성 혈액을 헌혈했던 사람에게 또 헌혈을 받고, 전산입력을 3년 5개월 뒤에 해 에이즈 양성 혈액이 의약품 원료로 사용되고, 헌혈자 이름이 뒤바뀌어 간염 양성 혈액이 수혈되고….' 선진국 문턱에 있다는 우리나라에서 혈액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검찰이 수혈에 따른 질병감염사례들을 수사한 결과, 전국 혈액원들이 저지른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에이즈·간염 양성혈액이 곳곳에 퍼져나간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실제 피해가 발생한 사례는 수혈을 받고 간염을 일으킨 8명에 한정됐지만 이는 순전히 운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1차 헌혈에서 에이즈 양성판정을 받은 51명으로부터 다시 채혈을 한 것. 과거 헌혈경력만 한번 조회해 보면 해당 헌혈자들을 다시 채혈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혈액원은 규정을 어기고 경력조회를 하지 않았다.
또 1차 에이즈 양성판정자들의 혈액 정보를 입력하면서 이름의 글자 하나씩을 잘못 입력, 전혀 다른 사람의 혈액으로 전산화해 에이즈 감염 가능성이 있는 혈액 146건이 유통됐다. 2000년 4월 에이즈 1차 양성판정을 받은 헌혈자의 정보를 3년 5개월 후인 지난 해 9월에야 전산입력하는 바람에 이들 가운데 112명이 재헌혈을 해 이 중 360건이 의약품 원료로 출고되기까지 했다.
이들 에이즈 양성 혈액은 최종적으로 에이즈가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 결과적으로 피해는 없었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일반적으로 에이즈의 경우 1차 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더라도 이 중 1%만 에이즈 혈액으로 최종 판명된다.
유통된 혈액이 에이즈 감염 혈액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 폐기에 늑장을 부려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와 혈액수혈연구원은 역학조사를 통해 지난 해 3월 채혈된 최모씨의 혈액이 에이즈 감염혈액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이 혈액으로 의약품을 만들고 있는 제약회사에 출고중단을 통보한 것은 4개월 여 후인 지난 해 7월이었다. 이 혈액은 다행히 출고 직전 단계에 폐기됐다.
B, C형 간염은 실무적인 실수가 바로 수혈 감염 피해로 나타났다. 혈액 자체를 바꾸어서 검사한 사례, 플레이트 순서가 뒤바뀐 사례, 검사 결과를 전산에 잘못 입력한 사례 등으로 인해 8명의 수혈자가 간염에 감염됐다.
이번 수사를 통해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에이즈 바이러스 잠복기에 있는 혈액은 채혈과정에서 감염사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헌혈자에 대한 문진(問診)을 강화해 에이즈 감염 위험에 많이 노출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원천적으로 헌혈에서 배제하는 수밖에 없으나 이 또한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헌혈이 에이즈 검사의 기회로 활용되는 것도 문제다. 검찰은 "에이즈 감염자나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예 헌혈을 못하도록 해야 하는데, 헌혈 기록카드에 '에이즈 검사를 목적으로 헌혈할 경우 상담원에게 말해달라'고 적혀 있어 에이즈 감염 위험군의 헌혈을 부추기고 있다"며 시급히 개정할 것을 주문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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