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많이 짧아졌다 / 김종길 지음솔 발행 7,500원
한 오십 년 시 속에 살다 보면 가벼운 숨결이 긴장의 탄사(歎辭)가 되고, 스치는 눈길이 피사체의 시적 의미에 머물게 되나 보다. 그 숨결과 눈길이 익고 삭아, 긴장을 놓게 하는 편한 시가 되는 것일까.
시에는 군더더기의 묘사 대신 담담한 탄사가 있고, 실존의 사물이 동그라니 놓여 있는데, 그게 그대로 쩡쩡 울리는 시다. 원로시인 김종길(78ㆍ고려대 영문) 명예교수의 신작 시집 ‘해가 많이 짧아졌다(솔 발행)’에는 그런 감흥을 저절로 들게 하는 시 70편이 담겨있다.
시인의 만년은 관조적이다. 가을의 먼 산은 ‘사물의 명암과 윤곽이/ 더욱 또렷해진다/가을이다./아 내 삶이 맞는/ 또 한 번의 가을!/ 허나 더욱 성글어지는 내 머리칼/ 더욱 엷어지는 내 그림자/ 해가 많이 짧아졌다.’(가을)
관조의 시선은 담담하지만 깊다. ‘사실에만 충실하다고 해서/ 예술이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저 빨랫줄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헌 옷가지들이 받는/ 따스한 저녁 해를/ 무엇이 이토록 참답게/ 기록하고 보존해주랴.’(사진)
그는 과작(寡作)의 시인이다. 첫 시집 성탄제(1969년) 이후 45년 동안 세 권만 냈다. 이번 다섯 번째 시집은 97년 이후 8년간 모은 시편 중 일부를 추려내고 묶은 것이다. ‘자식도 꼭 낳아야겠다고/ 낳는 것만은 아닌 것처럼/ 책도 꼭 내야겠다고 내는 것만은 아니다./ 자식이나 책이나/ 낳고 나면 민망스러운 애물,/ 게다가 慈情 비슷한 것까지 끼여드니/ 딱한 노릇이다.’(책을 내면서)
문학평론가 김우창 씨는 “그는 사실과 시의 엄격함 속에 삶의 따뜻함을 담아낼 수 있는 시인”이라고 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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