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와 소비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투자(기업)도 소비(개인)도 하지 않지만,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씀씀이는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 지출만 줄여도 내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의 최근 발언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투자와 소비의 국내외 양극화 현상이 우리 경제의 회복을 막는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투자 기피로 고정자산 급감
"기업들의 매출은 늘어났지만 투자 부진의 여파로 고정 자산이 급감해 중견 대기업들의 생산 기반이 위축될 우려가 높다." 산업은행은 29일 '기업 보유 자산 현황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매출액 10억원 이상 2,500여개 기업의 재무 구조를 분석한 뒤 이 같은 진단을 내놓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매출액은 1999년 505조원에서 지난해 604조원으로 4년 새 100조원 가량(19.6%) 늘어났지만, 총자산 규모는 같은 기간 614조원에서 585조원으로 오히려 29조원(4.7%) 감소했다.
이처럼 총자산이 감소한 것은 현금 등 유동 자산 증가에도 불구하고 고정 자산이 99년 392조원에서 344조원으로 12.2% 급감했기 때문. 특히 기업의 생산 능력과 직결되는 기계 장치 자산의 경우 이 기간 17.4%(16조원)가 감소했다. 기업들이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생산기반 확충을 위해 고정 자산에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만 쌓아두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해외 씀씀이는 확대일로
이처럼 국내에서는 투자에 인색한 기업들이 해외 투자에는 적극 나서면서 해외 직접 투자는 폭증추세다. 올 상반기 국내 기업의 해외직접투자는 35억달러로 지난해 동기의 21억1,000만달러에 비해 65.9%나 증가했다. 2001년 상반기(45억3,000만달러) 이후 3년 만에 최대 규모다.
특히 대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중국과 일본에 2억3,000만달러를, LG전자는 영국에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는 등 대기업 투자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110% 급증한 18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투자 규모에서도 1,000만달러가 넘는 대형 투자가 19억8,000만달러도 전년 동기에 비해 117.6% 증가, 갈수록 해외 직접 투자도 '대형화' 양상을 띠고 있다.
기업 투자 뿐 아니라, 내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개인들의 소비 역시 여전히 증가세다. 한국은행의 국제수지동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서비스수지 적자액은 총 33억8,750만달러. 서비스수지 악화의 주점은 해외 여행으로 6월에만 8억4,770만달러를 해외에서 쓰는 등 올 상반기 해외 여행 경비가 43억2,760만달러에 달했다. 또 6월중 유학·연수 명목의 대외지급액은 1억9,890만달러로 전월에 비해 3,860만달러 늘었다. 국내에서 소비를 일으켜 돈을 돌게 해야 할 부유층들이 국내에서는 씀씀이를 줄이는 대신 해외에서만 열심히 돈을 사용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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