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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낯선 사람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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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낯선 사람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 능력

입력
2004.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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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차, 전차가 생겨나기 이전에 사람들은 몇 분에서 몇 시간동안 서로 바라보면서도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을 능력이 없었다." 베를린 대학 교수였던 사회철학자 게오르크 짐멜이 1908년에 쓴 구절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유럽에 등장한 새로운 대중교통 수단이 도시의 외형뿐 아니라 사람들의 교제방식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한 글이다. 근대도시의 발생과 더불어 사람들은 대중교통 수단 안에서는 물론 공공장소와 대규모화된 직장에서도 낯선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를 수도 없이 갖게 되었다. 그 집의 숟가락 개수까지 알던 이전의 공동체적 삶과는 달리 이제 사람들은 낯선 이로부터 자신의 사적 영역을 지키기 위해 거리를 취하는 익명적 교제방식을 터득해야 했고, 그것이 짐멜이 지적하듯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도 아무 말없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근대적 도시민을 탄생시켰던 것이다.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유럽인들보다 100여 년이나 뒤늦게 근대도시적 생활방식을 받아들인 대한민국 서울의 도시민들이 이미 백 년 이상 먼저 그런 경험을 해 온 독일인들보다 저 익명적 교제방식에 훨씬 더 익숙해 보인다는 것이다. 오히려 독일인들은 기차에서 마주 앉게 될 때는 물론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거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탈 때, 조깅 중 마주치거나 병원 대기실에 들어설 때 안면도 없는 낯선 사람을 향해 먼저 인사를 건넨다.

백여 년이나 뒤늦게 도시 생활을 시작했던 우리가 이들보다 더 철저히,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저 능력을 갖게 된 데엔 우리 삶의 조건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거의 매일같이 사람들로 터져나는 만원 버스와 전철, 통근기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게 밀착해 있는 바로 옆 사람의 시선까지 회피할 수 있는 테크닉을 익혔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200년이 넘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서서히 개인의 사적 영역과 개인들 간의 거리를 확립해온 유럽과 단시간에 압축적이고 집약적으로 근대화를 이뤄야 했던 우리의 차이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들 사이의 거리가 확실한 독일인들이 아무 부담 없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데 반해 이러한 개인주의가 뿌리 내리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그보다 더 많은, 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떠안는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남시 독일/독일 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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