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 김태정 지음창비발행 6,000원
애먼 욕을 먹고도 아무 말 못하고 선 친구가 있다. 곁에 선 그는 팔 걷어붙이고 상대에게 덤벼드는 대신, 친구를 가만히 감싸 안는다. 그에게 급한 것은 상처받은 친구다. 상대? 힐끔, 매섭게 쳐다봐줄 뿐이다.
김태정(41) 시인. 문학이 패배자의 편에 서는 것이라면 그는 참 좋은 자리를 잡은 듯 보인다. 등단 13년 만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은 시인이 그 좋은 자리에서 오랜 시간 다듬은 따뜻하고 옹골찬 시들이 있다.
공장 일로 학비를 벌며 야간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늦은 귀가길. ‘…늙다리 학생의 아르바이트보다 절박한/ 새끼들의 허기진 늦저녁을 위해…/ 비닐봉지 하나 달랑이며 올라가던…’(까치집) 철거촌 이웃의 고단한 생계를 어루만진다. ‘그대 이 언덕길 다할 때까지/넘어지지 말기를/ 휘청거리지 말기를…’ 기도한다.
그 역시 동화 쓰기로 가까스로 밥을 벌면서 ‘최저생계비도 되지 못하는 원고지만/그래도 이런 해피 엔딩이 있어서 좋다’고 자위한다. 그러다 가끔, 아주 가끔 울화가 치밀면 욕이 나온다. ‘…힘을 준다는 것/ 견디게 해준다는 것/ 시와 욕은 그래서 하나라는 것/ 이것이 나의 시론이고 개똥철학일 수밖에’(시의 힘 욕의 힘)
그는 문학이 좋다고 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삶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란다. 해서 그는 공장의 노동도 최저생계를 위한 부업이었으며, 자신은 늘 주변에만 머물렀다고 했다.
그것을 그는 한계라고 했지만, 시에서는 삶의 고단함에 찌들지 않게 하는 미학적 거리로 읽혔다. 서울 토박이인 그는 최근 전남 해남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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