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가 하고 싶었는데 내 꿈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른 채 가수로 데뷔했어요. 그러나 분명 내 꿈은 연기였어요. 100%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었기에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단역을 맡는다 할지라도. 스물 일곱 살에 한 새로운 나의 결정이고, 이 결정으로 난 지금 행복해요." (god 멤버 윤계상, SBS ‘형수님은 열 아홉’ 기자간담회에서)
“가수에 대한 꿈도 크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요. 대학교 때 춤바람이 나 가수가 됐지만, 사실은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정말 나중에 가서는 연기와 노래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겠죠.” (가수 비 KBS 2TV ‘풀하우스’ 제작 발표회 현장에서)
“굳이 한 가지를 본업으로 정하고 싶지 않지만 당분간 연기에 매진하고 싶어요” (핑클 멤버 성유리 MBC ‘황태자의 첫사랑’ 기자간담회에서)
KBS MBC SBS 3사의 수ㆍ목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가수들이 밝힌 연기에 대한 입장이다. “가수 활동 하지 않겠다”고 전격 선포하면서 “가수 그만두길 잘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임창정에는 못 미치지만, 연기에 대한 강한 애착이 배어 있다. 어찌보면 윤계상과 성유리의 말도 사실상 가수 포기 발언처럼 들린다.
가수들의 연기로의 ‘엑소더스’가 안방과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다. 우선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연기에 도전한 가수들 명단을 살펴보자.
비 윤계상 성유리 외에도 ‘때려’의 성시경, ‘상두야 학교가자’의 빈, ‘나는 달린다’ ‘불새’의 에릭, ‘논스톱4’의 전진 앤디 윤종신 MC몽, ‘귀여운 여인’의 이지훈, ‘보디가드’의 마야, ‘첫사랑’ ‘아름다운 유혹’의 신성우, ‘옥탑방 고양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이현우, 영화 ‘어깨동무’의 이성진, ‘돌려차기’의 김동완….
주연급을 맡은 가수들만 열거한 것이니 단역 출연한 가수들을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이쯤하면 ‘가수는 없고 연기자만 남았다’는 자조가 과장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같은 가수들의 연기자 전업 러시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손꼽히는 것은 음반업계 장기 불황. 불법CD와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로 음반업계가 4년 연속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수들의 연기자 전업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
여기에 가수를 출연시켜 그들의 인기를 업고 가려는 제작진의 이익이 맡아 떨어지면서, 가수들의 연기자로의 변신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음반업계 불황 탓으로만 돌릴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연기에 도전하는 가수들의 속사정이 저마다 달라서다.
우선, 가수로서의 활동을 사실상 포기하고(물론 말로는 언젠가는 활동 하겠다고 하지만) 연기학원까지 다녀가며, 변신에 ‘올인’ 한 가수들에게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음악 그 자체보다는 춤이나 화려한 이미지를 통해 ‘가수’로서 성공했다는 것과 솔로가 아닌 여럿이 활동하다 그룹이 해체되거나, 더 이상 같이 음악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가수라기보다는 엔터테이너를 지향, 끊임없는 자기 변신을 꾀하지 않고는 생명력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god의 윤계상, 핑클의 성유리, 신화의 에릭, 전진, 김동완, 샤크라의 황보와 려원, 클론의 구준엽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중 일부는 이런 상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사실상 가수활동을 접고 연기자로 변신을 꾀한다.
반면 연기와 음악활동을 병행하며 시너지효과를 꾀하려는 가수들도 있다.
드라마에 얼굴을 비치면서도 음반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이현우나 성시경, 비, 이지훈이 그 예. 솔로로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큰 이들은 음악활동을 쉬는 사이 연기를 하거나,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는 사이 가수활동을 하는 ‘투잡스’족이다.
이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연기ㆍ노래 모두에서 어느 정도 호평을 받거나, 두 분야 모두에서 별 볼일 없거나. 전자가 두 분야 모두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둘 중 하나에 딱히 집중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면, 후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욕을 먹으면서도 두 카드 모두 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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