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따르릉∼." 일을 거의 끝내고 가게 문을 닫을 즈음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네, '우물가' 가게입니다!" "'우물가'에 가면 냉수 한 그릇 줍니까?" "그럼요." 안주를 장만하며 휴대폰으로 회원들을 부르니 하나 둘씩 문을 열고 들어선다. 뚝배기에 막걸리 붓고 조롱박 띄우고 황태찜, 묵 무침, 맵싸한 전, 명아주 무침, 오이 냉채로 상을 차려 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회장도 회비도 없이 25년 세월을 이어온 순수하고 진실한 모임이다.회원들을 통해서 내가 가지지 못했던 넉넉함과 여유를 배워왔다.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주인 반, 객 반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안주가 비워지자 무엇을 준비할까 하다가 감자 생각이 난다. 소금으로 간을 해서 금세 삶아 내어놓으니 고향 추억이 술술 풀려나온다.
내 고향 7월도 오고 가는 추억 얘기 한 편에 자리를 잡는다. 농사 밑천인 풀베기가 시작되면 돌아가며 품앗이를 했다. 큰 작두를 대령시켜 하나는 풀을 먹이고, 또 하나는 뒤에서 이어주고, 두 사람이 작두를 밟고, 나머지는 나르고 풀산을 만들어 간다. 마당 한 편에 모기향을 피우고 처마 끝에 등을 달아 놓으니 환한 달빛에 온 동네 잔치하는 날 같다. 아낙들은 모여서 칼국수를 밀고 애호박에 풋고추전 부치고 옥수수 한 솥 앉히고 그 위에 감자 넣고 밀가루 반죽을 얹어서 푹 찌면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벌름거리게 한다. 시금떨떨한 막걸리를 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들이키시던 동네 어르신들, 그 사이로 논두렁 개구리들 목소리 모아 합창을 하면 신나는 야외음악회 마당이다.
할머니를 졸라 칼국수 몇 조각 얻어서 동생들과 숯불에 굽기도 했다. 반디를 잡아 망 속에 넣어 창가에 두면 반짝반짝 작은 별빛이 되기도 했다. 태산 같은 풀산 하나 만들어 놓고 깊어 가는 밤, 깊어 가는 웃음소리. 별빛이 깊어지면 그제야 사람들은 내일은 누구네 집으로 모인다며 의논하고 각자 집으로 흩어지곤 했다.
부족함이 많아도 나눠 갖는 마음만은 늘 푸짐했던 옛날, 부족한 게 없어지는 대신 마음이 메말라 가는 현실 앞에서 고향은 늘 그렇게 내 기억을 흔들어준다.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다가 우물가를 찾아오시는 손님들에게 생수처럼 시원한 쉼터가 되어 누구나 고향 생각 나면 찾아오게 하고 싶다. 그렇게 찾아 드는 손님들과 정을 나눠가며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sorry54512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