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5년 만에 매매가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등 전세가 하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주택 소유주가 세입자를 찾지 못해 전세가를 대폭 인하하는가 하면 기존 세입자가 이사를 가지 못하는 사태가 빈발하는 등 ‘역전세난’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특히 경기 침체 장기화로 중대형 평형의 전세가 하락 폭이 커지면서 소형 및 대형 평형 아파트의 전셋값 격차가 대폭 축소돼 아예 차이가 없거나 미미한 아파트 단지가 늘고 있다.
세입자들이 40~50평형대 아파트 전셋집을 구하려 하다가도 관리비 등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20~30평형대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아파트 분양가를 높이기 위해 지역 수요에 걸맞지 않게 대형 아파트를 과도하게 공급한 것도 중대형 평형 아파트의 전세가 하락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유니에셋 김광석 팀장은 “최근 입주하거나 입주를 한 아파트 가운데 소형과 대형 평형의 전세가에 거의 차이가 없는 물량이 상당수 있는 만큼 3대 이상 대가족의 경우 지금 대형 평형 전셋집을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강남도 ‘역 전세가’ 등장
지난 6월 입주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는 39, 48평형의 전세가가 4억5,000만원으로 똑같다. 전세 매물은 계속 쏟아지는 반면 전세 수요는 아예 실종되면서 9평이나 차이가 나는 아파트의 전세가가 하향 평준화한 것이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 “강남의 역세권 아파트인데도 평형대별로 전세가가 같은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며 “최근 경기 침체로 대형 평형 전세 아파트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전세가가 하락한 주 원인”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기에 입주한 서울 은평구 불광동 현대홈타운도 비슷한 실정이다. 총 762가구인 이 아파트는 지난 달 한꺼번에 150가구 이상의 전세 매물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면서 25평형과 33평형 전세가가 같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현재 25평형 로얄층의 전세가격은 1억4,000만원으로, 이 정도면 32평형 비로얄층을 구할 수 있다.
신규 아파트 뿐만 아니라 기존 아파트도 전세가가 하향 평준화하고 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 관악벽산타운은 32평형 전세 상한가가 1억1,000만원으로, 43평형 전세 하한가와 차이가 거의 없다. 또 구로구 고척동 삼익1차아파트도 33평형과 41평형의 전셋값이 1억2,500만원으로 똑같다.
수도권 일부 단지, 대형이 더 싸
서울에 비해 수도권 대단지 아파트의 역전세 양상은 더 뚜렷하다. 특히 일부 아파트는 대형 평형대 아파트의 전세가가 오히려 소형 평형보다 낮아지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7월 말부터 입주하는 경기 용인시 죽전지구 현대아이파크는 1차 32평형 전세가가 최고 1억원인 반면, 2차 39평형은 오히려 1,000만원이 낮은 9,000만원에도 구할 수 있다. 1차 아파트의 입지 여건이 2차 보다 다소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같은 지역에서 7평이나 넓은 아파트의 전세가가 더 낮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또 경기 파주시 교하읍 자유로 아이파크 아파트도 34평형 로얄층 전세가가 7,500만원을 호가하지만 41평형 급매물은 7,000만원에도 구할 수 있다. 세입자를 구하기 어렵자 일부 중ㆍ대형 평형 소유자가 전세가를 대폭 내리는 바람에 이 같은 전세가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서울 지역에서는 전세가 역전 현상이 거의 없었다. 수도권 지역 또한 1기 신도시가 입주하던 1990년대 초반 당시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 일부 지역에서 전세가 역전 현상이 잠깐 발생한 적이 있을 뿐이다.
/송영웅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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