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경고포격 논란이 혼돈 속을 헤맨 지난 주,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D-13'을 새삼 흥미롭게 보았다. 위기의 전말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화는 '앞마당을 어지럽히는 붉은 개' 소련을 응징하려는 군부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케네디 대통령 참모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곧장 비교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담아 낸 군과 문민정부의 고유한 속성과 책무에 비춰보면 우리가 직면한 혼돈의 정체를 가늠하기도 한결 쉬울 듯 하다.1962년 10월 쿠바의 소련 핵미사일을 확인한 미 군부와 CIA는 공중폭격과 전면침공을 주장한다. 핵 위협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이지만, 61년 피그만 침공 실패의 치욕을 만회하려는 의지가 앞섰다. 그러나 취임 직후 국정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난 정부가 기획한 피그만 침공을 승인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겪은 케네디와 참모진은 군부의 강경책을 진보적이고 경험 없는 젊은 대통령을 시험하는 또 다른 함정(陷穽)으로 인식한다.
케네디는 "장군들에겐 국익수호가 우선이고 최선이지만, 핵전쟁으로 모두 죽은 뒤 잘못을 깨달을 수는 없다"며 미사일 추가반입을 막기 위한 해상봉쇄(Blockade)를 결정한다. 이마저 소련과 여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검역·검색(Quarantine)이란 완화된 표현으로 발표한다. 이때까지 국민은 위기상황을 몰랐다. 케네디는 낌새를 챈 언론을 "숱한 생명이 걸렸다"고 설득, 공식발표 때까지 보도를 보류하게 한다.
유화책에 반발한 군부는 임의로 전쟁대비태세(Defcon)를 높이고, 피격위험이 높은 공중정찰을 감행한다. 케네디는 장군들이 전쟁을 바라고 위기를 고조시킨다고 판단, 맥나마라 국방장관에게 봉쇄작전을 지휘하는 해군 상황실에 상주하며 군을 견제하도록 한다. 동시에 군 수뇌부 교체를 주장하는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의 혈기를 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억누른다.
케네디는 봉쇄 라인의 해군이 소련 잠수함과 대치하자, 구축함장을 직접 호출해 무력사용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등 충돌 회피를 위해 고심을 거듭한다. 맥나마라도 해군 수뇌부가 봉쇄 라인을 넘은 소련 미사일 수송선에 교전수칙을 앞세워 경고포격을 한 뒤 해상봉쇄는 독립전쟁 이래 해군 소관이라고 맞서자, 전쟁은 대통령의 전권이라고 질타하며 문민 통제를 관철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소련 함선이 봉쇄 라인에서 물러서고, 흐루시쵸프가 물밑 협상을 제의해 사태는 타협적으로 해결된다. 흐루시쵸프는 국위 실추가 빌미가 돼 실각하지만, 단호하면서도 절제된 리더십으로 핵전쟁을 막은 케네디는 명실상부한 자유진영의 지도자로 부각됐다.
이 역사 속 에피소드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군과 대통령의 소임과 책무가 다르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서해 사태에서 해군이 북측의 뒤늦은 교신시도를 무시하고 정해진 지침 만을 좇아 경고포격을 한 바탕은 남북화해와 신뢰구축이란 차원 높은 정책 목표보다는 북방한계선(NLL) 침범 과 도발 저지라는 기본임무에 충실하려는 의지가 앞선 탓이라고 본다. 2년 전 서해 교전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는 강박의식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북측이 우발충돌방지 합의도 잘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위험한 대치 현장의 우리 군에 고도의 자제력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 무리한 측면이 있다.
물론 북측 의도 판단에 중요한 교신 정보를 숨긴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참모들이 군의 특성과 적대관계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체질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수권 무시를 떠들며 흥분한 것은 장군들보다 근시안적이다. 조용히 사태를 처리한 뒤, 남북합의 정신을 대치현장에서 실현하는 길을 고민하는 지혜가 무엇보다 아쉬웠다. 장군들에 비할 수 없이 막중한 책무에 걸맞게 사려 깊은 안목 없이, 사태의 본질이 북측의 NLL 침범에 있다는 강퍅한 보수 논리에 맞서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본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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