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26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국가 정체성을 거론하며 노무현 대통령을 공격하는 데 대해 "유신 독재시대의 잣대로 정체성이 흔들린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정면 반박했다. 청와대는 또 "유신시대를 연상시키는 구태의연한 색깔 공세"라고 비난했다. 청와대가 박 대표 공격에 직접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이날자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참여정부가 4·19 혁명과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힌 노 대통령의 연설을 상기시키면서 "이는 참여정부가 5·16 군사쿠데타로 4·19 혁명을 압살한 유신체제, 그의 아류인 5공 정권과 대척점에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밝혔다.
브리핑은 이어 "참여정부가 수호하려는 국가 정체성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보면 된다"며 "다만 관권통치의 수단이었던 유신헌법이 아니라 1987년 개정된 민주헌법"이라고 강조했다.
브리핑은 "강제와 탄압, 인권유린을 통치수단으로 삼았던 개발독재시대의 국가주의적 정체성으로는 결코 선진 민주국가, 진정한 시장경제 시대로 갈 수 없다"며 "구태의연한 이념 공세가 횡행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국가 정체성으로 당리당략에 몰두하는 정치현실이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한편 노 대통령도 박 대표의 입장 표명 요구에 대해 최근 "헌법에 담긴 사상이 내 사상이라 달리 대답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고 윤태영 제1부속실장이 '청와대 브리핑' 기고문을 통해 밝혔다. 노 대통령은 다만 "이철, 유인태씨 같은 사람들이 유신에 항거해 감옥살이 할 때 판사 한번 해보려고 유신헌법으로 고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면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덧붙였다.
윤 실장은 "한나라당은 시장경제도 민주주의도 포기하고 국정원이 정치인 뒷조사를 하고 검찰은 정치 보복의 첨병 역할을 하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것인가"라며 "대통령은 결코 그런 시절로 되돌아갈 생각이 없는 만큼 한나라당 정체성부터 밝히는 게 순서"라고 공박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與 "박근혜 때리기" 강도높여
열린우리당의 '박근혜 때리기'가 연일 강도를 더하고 있다. 우리당은 박 대표가 '유신시대 퍼스트레이디'라는 점을 부각시킨 데 이어 26일에는 "박대표 사과는 말뿐인 사과"라고 압박했다. 김현미 대변인은 이날 "TV에 나와서 '죄송하다'는 말로 사과가 됐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라며 "진정으로 사과를 한다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진짜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헌법을 짓밟은 아버지를 도왔던 사람이 국가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유인태) 등 박 대표의 국가 정체성 논란 제기에 대응해 우리당이 꺼내 든 반격 카드인 유신 문제의 수위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이다. 이날 상임중앙위에서도 이미경 의원은 "정체성 논란을 제기하며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한다"고 박 대표를 비난했다.
이 같은 박 대표 때리기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 대표에 대한 본격 견제의 성격임은 물론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내에서도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데 벌써부터 이렇게 두들겨 맞으면 제대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야당에 대권 카드가 그리 많지 않은데 걱정"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아울러 여권이 과거사 문제로 한나라당과 대립 각을 세운 데는 반(反)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한나라당의 근간이 친일, 군사독재, 권위주의체제 등에 뿌리박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흔들리는 우리당의 지지 층을 붙잡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우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중도에 선 사람들 중에서 유신을 싫어했던 사람들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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