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용의자 유모씨의 잔혹한 범죄가 보도된 것은 일요일인 18일 낮.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수시로 긴급 뉴스를 내보낸 데 이어, 종합뉴스에서 각각 15꼭지 내외를 편성, 집중 보도했다. 19일자 주요 신문도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2,3개 면에 걸쳐 관련기사를 자세히 게재했다.범죄보도에서는 신속성보다 정확성과 인권보호가 더 중요하다. 작은 오보나 부주의한 보도가 자칫 개인의 명예훼손과 사생활침해라는 큰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권보호의 시각에서 이번 범죄보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먼저 신문별로 용의자의 이름을 유모씨에서 실명을 다 밝히는 등 다양하게 표현했다. 범죄보도에서 실명사용은 기사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높이고, 범죄억지효과를 낳고, 공권력 감시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1981년 여대생살인사건을 비롯해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등 피의자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례에 비춰볼 때, 실명사용으로 인해 피의자가 입을 엄청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자백과 현장검증을 통해 범죄를 시인한 점에서 실명의 사용여지는 넓다. 또한 수사 진행시점에 따라 유씨의 실명표기에 대한 언론의 고민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인권의식을 보여줬다.
그러나 언론은 범죄사실의 보도 순간부터 작은 정보의 공개로도 쉽게 침해될 수밖에 없는 피의자 가족의 사생활(Privacy)권 보호에는 소홀했다. 실제로 가족 중 모친과 전처 그리고 자녀는 언론의 취재요구에 시달리자 잠적했고, 그 과정에서 전처는 생계수단인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보도됐다(한국일보 21일자).
다음으로 언론은 유씨의 살해대상을 보도방 여성과 일반여성으로 구분했고, 살해동기로 용의자가 말한 ‘성적 방종’을 들었다. 피해자로서 ‘여성’을 강조하는 내용은 범죄의 심각성과는 무관한 선정적 보도였다. 소외집단의 여성 피해자를 흥미거리로 삼은 보도는 또한 유씨의 반인간적 범죄를 다분히 부도덕한 여성을 살해한 윤리적 범죄로 왜곡시킬 우려가 있는 성차별 보도였다.
방송의 범죄보도에서 유의해야 할 것은 자세한 범행방법의 묘사와 잔혹한 폭력장면이 시청자,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이다. 방송심의규정에서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연(再演)기법의 사용을 자제하고, 범죄수법 등을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드라마나 영화의 폭력장면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TV 수상기에 폭력장면 중단칩(V-chip) 설치를 의무화했다.
이번 연쇄살인범죄는 사회적 안전을 위협한 희대의 사건으로, 언론이 지대한 관심을 두고 신속하게 집중보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보도과정에서 용의자 주변인과 피해자의 사생활권은 물론, 폭력적이거나 잔혹한 방송뉴스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는 데는 미흡했다. 범죄보도가 시민의 알 권리충족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희생자와 용의자 가족의 인권을 지키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배려하도록 보도의 질적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이진로/영산대 매스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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