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이 사무총장을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운다는 소식은 격세지감이 들게 한다. 열린우리당은 국회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남궁석 사무처장의 후임을 보름동안이나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임명을 타진한 인사들이 하나같이 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고 사양하지만 '일은 많고 욕먹기 십상인' 골치 아픈 자리를 맡지 않겠다는 게 본심이다. 궁여지책으로 사무처장을 사무총장으로 격상시키고 상응한 권한을 보장해 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정당 슬림화 등 정당개혁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집권당 사무총장은 막강한 자리였고 노리는 사람도 많았다. 지구당과 시·도지부 등 전국 조직을 거느리고 엄청난 액수의 정치자금을 주무르기 때문이다. 선거 때면 공천에도 깊숙이 간여한다. 총재인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는 등 당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당정이 분리돼 당은 홀로서기를 해야 하고, 정당법 개정으로 지구당은 없어졌다. 정치자금법도 바뀌어 모든 돈의 지출이 투명해졌다. 조직과 돈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게 된 것이다. 정치는 원내 중심으로 돌아가 원내대표가 각광을 받고, 당의 주요 의사결정은 중앙위원회 등 회의체가 주도한다. 1인 보스 정당체제가 깨졌기 때문이다. 사무총장이 총재를 겸한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당론을 주도하는 것 등은 옛날 얘기다. 여기에다가 우리당에는 사무처 노조까지 생겼다. 이들은 당직의 낙하산 인사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과거 사무총장들의 잇단 수난도 부담이 될 것이다.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안기부 비자금 사건으로 정계를 은퇴하는 등 신고를 겪었다. 같은 당 김덕룡 사무총장도 비자금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강 총장은 1996년 총선을, 김 총장은 한 해 앞서 지방선거를 치렀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김영일 전 의원은 대선 불법자금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같은 대선에서 노무현 캠프의 총무본부장을 맡았던 이상수 전 의원 역시 영어의 몸이다. 정치자금은 나눠 썼기 때문에 모두가 공범인데, 사무총장만 무한 책임을 지게 됐다고 억울해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사무총장을 당과 당원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로 보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치개혁은 많은 경우가 당사자에게 일정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당의 사무총장 모시기가 과도기 정치상황의 한 징표로 끝나길 바란다. 힘든 자리지만 하겠다는 사람이 나올 때 정당개혁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병규 논설위원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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