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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내 추억 속의 복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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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내 추억 속의 복날 풍경

입력
2004.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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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냇가에 커다란 화덕을 만들고, 어느 해엔 거기에 소머리를 삶기도 하고 또 어느 해엔 동네의 큰 개 한 마리를 잡기도 한다. 모두들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나면 부락의 가장 나이든 좌장어른께서 동네 젊은이들을 불러 조용조용 타이른다. "저기 길옆에 너희 집 논 말이다. 이대로만 가면 큰 수확을 하겠더라. 그런데 다른 동네 사람이 보면 '이 동네는 논에 피를 저렇게 세워놓아도 그걸 나무랄 어른도 없나' 그럴까 봐 내가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또 지난 겨울 노름을 했던 아저씨를 불러서는 "이제부터는 손끝에 힘쓸 거 있으면 그 힘 논밭에 다 쓰고, 다시는 화투장 같은 거 쥐지 마라"고 타이르고, 울 너머로 늘 큰 소리를 내는 집에 대해서는 "이제는 애들도 커가는데 그러면 되겠느냐"고 타일렀다. 그리곤 마을 젊은이 모두에게 축제의 선포처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하늘이 놀라고, 땅이 놀라도록 어디 한번 신명을 내 놀아보아라."

내가 본 농경사회의 마지막 풍경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그들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은 그 자리에 외지인들이 몰려와 나일론 자리를 깔고 앉아 안팎간에 허연 맨살을 드러내고 화투를 친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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