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 알드의 조선전도 발행 이후 서양고지도에서는 '한국해' 표기가 완전 정착단계(1735∼1790년)로 접어든다. 주목할 점은 한국해 표기를 상당수 일본 관련지도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는 점이다.뒤 알드의 '중국통사'가 출간되고 1년 후인 1736년에 프랑스 역사가이자 여행가인 샤를르보아(1682∼1761)가 두 권으로 된 '일본역사 및 일반서술'을 출간했다. 이 책의 1권에는 하멜표류기의 2부인 '조선전'과 프랑스 해군성의 지도제작자 니콜라스 벨렝(1703∼1772)이 1735년에 제작한 '일본전도'가 함께 실려있다. 전도 내용 중에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 지도는 일본학자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사람들, 특히 예수교 선교사들의 기록에 기초해 만든 것이다.'
이 무렵 프랑스 지도제작자들은 일본인이 만든 지리 및 지도정보와 하멜표류기를 통한 조선의 정보, 그리고 포르투갈인들이 모은 정보, 중국에서 지도작업을 한 레지 신부의 정보를 모두 참고해 지도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동양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 시기 지도는 단순 지식에 의존했던 이전과 달리 광범위한 정보 수집과 분석의 결과물이었다.
이처럼 일본과 주변의 종합적인 정보에 바탕해 객관적으로 제작된 지도에서 동해와 대한해협을 모두 '한국해(mer de coree)'로 표기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해'라는 명칭이 지도에서 뿐 아니라, 국제관계 속에서 확고하게 정착됐다는 의미다. 18세기 중엽부터 말까지 일본전도 가운데 한국해 표기 지도는 프랑스의 벨렝, 영국의 엠마누엘 보웬, 네덜란드의 홀트롭과 이탈리아의 이삭 티리온(1705∼1765)의 지도 등 여러 종이다.
이후로도 1757년 벨렝이, 1780년 영국의 토머스 키친이 제작한 같은 이름의 '광동, 요동 및 조선전도'에 한국해 표기가 나타난다. 또 18세기 중엽 유럽 여러나라에서 만든 '카타이(Cathay·북중국) 지도'에서 네덜란드어,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한국해가 표기돼, 당시 유럽 지도제작자들은 한국해 사용을 당연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한국해 표기는 18세기 말까지 지속됐다.
/이돈수·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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