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끝자락인가 싶더니 돌연 무서울 정도의 무더위가 찾아왔습니다. 습한 대기의 기운마저 겹쳐 더 덥게 느껴집니다.지난 주 산수국을 이야기하며 추적추적 비 내리는 숲 속의 분위기를 생각하는 일이 아주 멋있었지요. 하지만 더운 여름날 특히 남쪽 지방에 가면 대문 옆이나 담장 위에 탐스럽게 피어나는 남보랏빛 수국의 풍성한 꽃송이도 더위를 가시게 할 만큼 시원하고 아름답습니다. 오늘 수국이야기를 좀 더 할까합니다.
요즘 한 TV드라마가 아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일하는 연구실에서는 식물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데 아르바이트 학생들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젊은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니 이 TV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대화가 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마음먹고 저도 50%가 넘는 시청률에 가담했습니다.
소문 만큼 멋진 남자 주인공이 나오더군요. 연인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그는 수많은 여성의 마음을 설레임과 부러움으로 가득차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국의 학명을 붙여준 지볼드(Seibold)라는 네덜란드 해군제독에는 못미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1800년대 해군 군의관으로 일본에 와 수많은 식물을 세계에 소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동양의 신비스러운 꽃, 수국을 보며 공식적이고 학술적인 식물의 학명(學名)에 그의 일본인 애인(아내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오다끼’의 이름을 붙여 지금도 전세계 사람이 수국을 보며 그녀의 이름을 함께 부르고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식물 품종을 만들 때 벼는 ‘통일’, 배나무엔 ‘화성’하는 식으로 딱딱한 이름을 붙이는 반면, 서양사람은 아름다운 장미의 새로운 품종을 만들면 ‘엘리자베스’ 등 연인이나 아내 이름을 붙여주지요. 그것도 대단한데 학명에 연인 이름을 붙인 것은, 권위를 중시하는 우리 학계의 풍토로 볼 때 매우 파격적인 일이지요.
서두가 너무 길었지요. 수국은 꽃 색깔이 변하는 식물로 유명합니다. 식물들은 저마다 가진 색소가 조금씩 다르고 그 색소가 어떻게 발현되느냐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는 꽃 색깔이 달라집니다. 수국의 경우는 안토시아닌이 금속과 결합해 색깔이 변합니다. 수국이 처음 꽃을 피우기 시작할 때 그 빛깔은 연한 녹색이 드는 백색에 가깝지요. 아직 엽록소가 조금 남아 있을 때 입니다. 개화가 진행되면서 안토시아닌이 합성돼 푸른색으로 나타나고 완전히 피면 붉은색이 됩니다.
토양 산도에도 영향을 받는데, 흙에 있던 알루미늄은 토양이 산성화되면 이온화돼 뿌리에 흡수되면서 안토시아닌과 결합해 푸른색을 띠게 되고, 반대로 토양이 알카리성이면 알루미늄이 부족해 붉은색이 돕니다.
수국을 옮겨 심으면 색깔이 변하다는 것은 옮겨 심은 토양의 산도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포기를 이루는 수국의 줄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빛깔의 꽃이 피는 것은 뿌리와 줄기가 뻗은 상태에 따라 가져오는 알루미늄의 양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따라 같은 사람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은 ‘변하기 쉬운 마음’입니다. 흔히 변하기 쉬운 것이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절대로 아름다운 여인에게 수국처럼 아름답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을 지난 주에 드렸습니다. 혹 잊으셨다면 지난 주에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 보십시오. 가을도 아닌데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어 말이 길어졌습니다. 그 TV드라마가 마음 설레게 했기 때문일까요?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