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해군간 교신 보고 누락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변죽만 울리다 흐지부지 끝이 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합동조사단의 진상조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추가조사를 지시한 이후 군청(軍靑) 간 정면대립 조짐까지 보일 정도로 파문이 확산됐으나 결국 관련자들의 판단 잘못 등에 따른 단순 보고 누락으로 싱겁게 결론이 났다.23일 노 대통령에게 조사결과를 보고한 합조단은 장군 2명에 대해 엄중 징계, 영관급 3명에 대해 경징계를 건의했으나 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견책 이하의 경고적 징계로 끝날 전망이다.
합조단 보고에 따르면 이번 사태의 원인은 관련자들의 판단 착오 또는 보고 태만이었다. 우선 해군 2함대사령부로부터 북측의 송신사실을 보고 받았으나 이를 '기만통신'으로 판단해 합동참모본부에 보고 하지 않은 김성만 해군작전사령관과 교신내용에 대한 자료를 첩보부대로부터 입수하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합참 백운고 정보융합처장이 징계를 받게 된다. 백 처장은 '북 경비정이 NLL 월선 당시 우리측의 교신시도에 응하지 않았다'고 보도된 15일 오전 분석장교로부터 전날 NLL 상황을 보고 받았으나 작전계통에서 북측의 송신사실이 보고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후 이를 정보보고서에서 삭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장과 정보·작전본부 과장 및 실무장교는 정보보고를 태만히 한 책임으로 징계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15일 국가정보원이 교신사실을 통보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관련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합참 고위 관계자의 '태만'에 대해서는 전혀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합참 고위 관계자들이 과연 교신사실을 사전에 보고 받지 못했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반대로 징계대상이 된 정보본부의 과장은 '상관에 대한 보고 일정을 잡지 못한 책임'으로 징계를 받게 되는 등 억지로 징계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이 남긴 교훈은 남북 해군 가운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송신을 한 뒤 무선을 끝내버리지 않도록 남북 합의로 교신규칙을 정하는 등 확실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일방송신이 포괄적 의미의 교신이냐를 놓고 군 내에서 논란이 빚어졌고, 그 결과 혼선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또 서해상 교전규칙도 남북 합의정신에 걸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상대 함정과 민간선박에 대해 부당한 물리적 행위를 금지키로 남북이 합의한 만큼 교신이 이뤄지면 경고사격을 일정 시간 유보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북한 함정의 NLL 침범에 대한 우리 해군의 대응과 경고사격은 현행 작전예규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靑 "이제 뒤처리는 국방부서"
청와대는 23일 남북 해군간 교신 보고 누락 사건과 관련한 발표와 조치를 모두 국방부에 넘겼다.
청와대 김종민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이 조사 결과를 보고 받고 정확하고 소상히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면서 "대통령 지시는 국방부 발표에 포함돼 있다"고만 말했다. 최근 연일 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입장을 발표하던 청와대의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또 조영길 국방장관, 김종환 합참의장 등을 문책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후속 처리 방안을 국방부에 넘기고 군 수뇌부를 경질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상처를 입은 군심(軍心)을 달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이 군과 청와대의 갈등으로 비쳐지는 데 대해 부담을 느껴 왔다.
청와대는 비록 군 관계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또 한 사건으로 군 수뇌부 책임을 물을 경우 북한의 전술에 이용 당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NLL을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군 수뇌부를 문책할 경우 북한 해군의 NLL 침범이 잦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건으로 국방장관과 함참의장까지 문책한다면 군 수뇌부가 앞으로 일하기 어렵고 북의 전술에 휘말릴 수도 있다"며 "국민 여론도 군 수뇌부 경질을 바라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보고 누락에 직접 관련된 실무자 및 관련 정보를 언론에 유출한 인사를 징계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추가 조사를 지시했을 때는 논란이 계속되는 문제에 대해 국민과 언론에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청와대가 입장을 발표했으나 이번에는 대국민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국방부가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하지만 이번 사건과 별도로 군 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8, 9월쯤에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후임 국방장관으로 민간 출신과 군 출신 중에 누구를 선택할지를 놓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軍 "불필요한 소모전 치른셈"
남북 해군간 교신 보고 누락사건을 1주일째 조사해온 합동조사단이 청와대에 결과를 보고한 23일. 국방부는 물론 야전에 근무하는 현역 군인들의 눈과 귀는 온통 합조단 발표 내용에 집중됐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추가조사까지 벌였던 조사단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일부 지휘관과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 라인의 개인 과실 정도로 결론 짓고, 노 대통령 역시 관련자에 대한 문책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자 불안감은 일시에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노 대통령이 허위보고 사태에 대해 추가조사를 지시하면서 격한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해도 군은 바짝 긴장했었다. 또 김종환 합참의장이 며칠 전 합참을 방문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만나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군 내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군 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이 군기를 한번 잡은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군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이번 조사 결과 발표를 끝으로 흉흉했던 분위기가 하루 빨리 진정돼 군이 안정을 속히 되찾기를 희망했다. 한 영관급 장교는 "이 정도로 가볍게 끝날 사안인데 지난 1주일 동안 온통 군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는 사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또 한번 불필요한 소모전을 치른 셈"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함께 노 대통령이 군의 사기를 강조하고,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을 당시 해군의 작전이 적절했다는 평가를 내린 데 대해서도 다행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 장교는 "청와대와 군의 갈등으로까지 비쳐졌으나 노 대통령이 '심기일전해 국방태세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하면서 끝을 맺은 것은 적절했다"고 말했다.
어정쩡한 마무리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장교도 많았다. 한 군 관계자는 "사건을 개인적인 과오로 결론 내렸지만 사실 이렇게 끝난다면 이번 사태가 준 소중한 교훈을 그냥 넘겨버리는 것"이라며 "전체적인 정보보고 체계와 군 기밀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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