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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등잔밑 여행-홍릉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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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등잔밑 여행-홍릉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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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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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를 호흡하는 산림욕, 다 아시죠. 울창한 숲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자연 휴양건강법 말입니다. 나무가 여러 세균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내뿜는 천연 항생제 피톤치드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다지요.그런데 나무 바람을 쐬러 차로 3~4시간을 왔다갔다 하면 산림욕으로 상쾌해졌던 몸도 금방 피곤해지겠죠. 이젠 멀리 가지 마세요. 서울에서도 제대로 된 산림욕을 즐길 수 있으니까요. 바로 홍릉수목원입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의 홍릉수목원은 1922년 개장한 국내 첫 수목원이다.

수목원 자리는 명성황후의 묘인 홍릉이 있던 곳으로, 1897년 이곳에 묻혔던 명성황후는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경기 남양주시로 이장됐다. 이후 능의 부속림인 주변 숲은 엄격히 통제됐는데, 일제는 동대문밖 울창한 이 숲에 한반도의 산림자원을 분석하기 위해 수목원을 조성했다.

그 숲이 지금까지 도심 깊은 곳에 섬처럼 남아 푸른 숨을 뱉어내고 있다.

홍릉수목원에는 침엽수원, 활엽수원, 관목원, 조경수원 등 9개 수목원과 수상, 난대, 약용 등 3개의 식물원이 있다. 수목원 내 나무에는 본적(출산지)과 호적(XX과 식물)이 병기된 이름표가 붙여져 있어 산림욕과 함께 자연 공부를 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최초의 수목원답게 내로라하는 나무가 많다. 세상에서 처음 발견됐다는 문배나무(제3수목원)가 살아있고, 그 옆에는 1920년대 중국에서 처음 들여온 두충나무 암, 수 두 그루가 서 있다.

이 부부 나무가 국내에 퍼진 모든 두충나무의 엄마, 아빠란다. 또 함경도가 원산으로 남한에는 한 그루밖에 없다는 풍산가문비나무(제5수목원), 둥글게 가지를 늘어뜨린 본관 뒤의 홍림원 반송도 빼놓지 말고 둘러볼 수목이다.

산림과학원의 정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난 산책로로 접어들면 본격적인 산림욕이 시작된다.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사이로 난 나무길에 서면 우렁찬 매미 울음소리에 바로 옆 도로의 차소리가 묻혀버린다.

산림과학관 위로 이어진 산책로을 따라가다 보면 제6수목원인 초본식물원이 나타난다. 놋젓가락나물, 활량나물, 여로, 진득찰, 뻐국나리, 뚝갈, 참반디, 꿩의다리아재비 등 우리 민족의 삶 만큼이나 질박한 이름의 풀들이 곱게 심어져 있다. 짚신을 닮은 짚신나물, 박쥐를 닮은 박쥐나물도 재미있다.

초본원 바로 위는 고종이 홍릉을 찾을 때마다 즐겨 마셨다는 우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 위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들어서며 수맥이 막히는 바람에 지금은 썩은 빗물만 고이는 소금쟁이의 천국이다.

어정을 지나면서 무성해진 나뭇가지가 하늘을 덮어 본격적인 ‘녹색샤워’가 시작된다. 진초록의 숲터널이 싱그러운 활력을 전해준다. 맨흙 바닥의 산길이 오르락 내리락, 등줄기에선 땀이 주르륵 흘러 내린다. 하지만 숲에서 흘리는 땀이라 끈적거리지 않고 오히려 시원하다.

홍릉이 있던 홍릉터와 작은 연못을 지나면 유실수만 모아 심은 유실수원이 나타나고 그 위로 조경회사들이 최고의 조경수들을 기증한 조경인의 숲이 조성돼 있다.

수목원 코스를 빠르게 걷기만 하면 1시간 가량 걸리지만 나무와 풀과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산림욕을 즐기면 2~3시간이 훌쩍 넘는다.

몸도 가뿐해지고 머리도 똑똑해지는 홍릉수목원 여행은 아쉽게도 매주 일요일(오전 9시~오후 5시)에만 가능하다. 주중에는 미리 예약한 단체객들만 들어갈 수 있다. 주차가 안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고 돗자리와 음식물의 반입이 금지된다. 애완견도 안된다.

수목원 건너편에는 세종의 성덕이 보존된 세종대왕기념관이 있고 그 뒤편에 고종의 후궁인 엄귀비의 묘 영휘원과 엄귀비의 손자 이진의 묘 숭인원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 하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 버스 국방연구원앞 정류장 1219번(우이동-청량리).

● 나도밤나무? 너도밤나무?

제4수목원에는 나도밤나무, 밤나무, 너도밤나무 3그루가 나란히 서있어 눈길을 잡아끈다.

너도밤나무는 밤나무와 같은 참나무과라지만 나도밤나무는 단지 잎 모양만 비슷하지 밤나무와는 조상이 다른 나무. 나도밤나무의 이름에는 전설이 있어, 율곡 이이가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이 밤나무 100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의 피해를 보게 될 것 이라고 해 율곡의 아버지가 산에다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중에 호랑이가 진짜 나타나 밤나무 숫자를 세니 99그루밖에 없자 그 옆에 있던 나무가 ‘나도 밤나무요’해서 나도밤나무가 됐다고 한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나무박사' 최명섭 연구관

“‘식물인간’, ‘식물인간’ 하지 마세요. 나무가 들으면 화낼 소립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최명섭(51) 연구관이 연구동 진입로변의 화백나무로 기자를 데리고 가며 하는 얘기다.

“차량 통행에 지장이 있어 화백나무의 길가 쪽 가지를 쳤더니 얼마 안 가 그 자리에 다시 가지가 뻗어나더라구요.

궁금해 자료를 찾아본 결과 화백의 줄기는 햇볕에 무척 약해 나무 스스로 가지를 늘어뜨려 줄기로 햇볕이 바로 쐐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을 알게됐죠. 식물도 자기 살길을 찾아 움직인다는 거죠.”

그는 산림과학원내 홍릉수목원의 실질적 관리를 맡고 있는 ‘나무박사’. “자식 돌보듯 나무에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만큼 잘 자랍니다. 절대 배반하거나 역적 짓 하지 않지요.” 그의 나무 사랑은 오래됐고 그만큼 깊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 그는 어릴 때부터 뒷산에서 묘목을 구해와 마당에 심다가 집안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했고, 대학시절 고향에 심어 놓은 400여 그루의 나무가 지금은 ‘작은 수목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1983년 광릉수목원 조성 때부터 실무에서 닦은 실력 때문에 최 연구관은 청와대, 총리관저 등 요처에서 나무와 관련한 자문을 자주 받곤 한다. “이론이야 대학 교수님들 따라갈 수 있겠어요.

하지만 나무가 왜 아프고 죽는지, 몇십 년을 직접 만지고 치료해본 경험이 현장에서 훨씬 효과가 큽니다.”

나무 다루기를 업으로 하는 이들이 그렇듯 최 연구관의 인상과 목소리도 무척 온화하다. 하지만 그는 올해 초 6개월만에 110kg의 몸무게를 84kg으로 줄인 강단의 소유자다.

체중 감소의 비결이 “그냥 적게 먹고 많이 움직여서”라 했고, 독하단 소리 들었겠다고 하자 “제가 최(崔)가 아닙니까”라며 슬쩍 웃고 만다.

그에게도 요즘 고민이 있다. 지방분권의 일환으로 조만간 산림과학원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는 데 이제껏 관리하던 홍릉수목원을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방치하면 금새 다 망가집니다. 홍릉수목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서울의 허파입니다. 최소한 ‘도시숲 연구소’의 형태로 나마 최소의 연구, 관리인력은 남아있어야 할텐 데 말입니다.”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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