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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동네서점 살리려면…

입력
200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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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지적, 문화적 시설은 다 갖추고 있으면서 의외로 서점이 없는 곳이 있다. 영화관, 여인숙, 교회, 주유소, 도서관, 이발소, 화랑, 잡화점 등등 다른 시설은 다 있다." 조란 지브코비치의 소설 '책 죽이기'에 등장한 어느 마을 풍경이다. '책'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제대로 된 대접 한 번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책의 일생을 유머러스하게 폭로한다. 소설은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책은 죽었습니다! 시디롬이여! 영원하기를!"이라는 구절로 끝난다.할인 경쟁 등으로 고사 직전인 우리의 소형 서점들의 현실과 너무도 닮아 큰 공감을 자아낸다.

동네서점도 살리고 출판산업도 진흥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변칙적인 도서정가제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현행 도서정가제에서는 법을 지키는 오프라인 서점은 매출이 줄고 있다. 법 제정 취지를 무시하고 할인 경쟁을 벌이는 온라인 서점, 할인 서점, 북 클럽, 홈쇼핑도 겉으로는 매출이 늘어났지만 사실상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최근 출판시장에서 강세인 실용서(성인용 자격증 수험서, 취미·여가활동 관련 도서)도 할인이 가능해져 도서유통시장이 더 혼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설령 할인을 허용하더라도 온·오프라인 서점 모두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마일리지나 경품 제공 등 유사할인 판매도 마찬가지다. 변칙적인 가격정책을 펴는 출판사나 도매상들로 인해 유통질서가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를 위반하면 판매업자만이 아니라 출판사나 도매상도 과태료를 물도록 해야 한다. 과도한 할인이 없어지면 책값 거품 현상도 사라질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5년간만 유효하다는 조항도 삭제해야 한다.

둘째, 도서공급률 표준화가 필요하다. 할인경쟁에 뛰어들기 어려운 영세한 동네서점이 마진율까지 손해를 보고 있어서 애초부터 대형 서점, 온라인 서점, 할인 서점과 경쟁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다. 동네서점이 서점 규모나 유통 형태에 따라 출판사와 중간 유통회사로부터 마진율에서 차등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거대 자본을 가진 몇몇 서점의 독점과 횡포를 막을 수 있다.

셋째, 서점업계도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객 만족을 위한 서비스 강화, 서점 정보화, 서점상품권 공동사업, 현금결제를 통한 마진율 개선, 전문 서점인 양성, 개별 서점의 특성화 등이 요구된다.

넷째, 정부는 과감하고 실질적인 동네서점 진흥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이를 테면 서점이 입주한 건물의 소유주에 대해 임대소득세 경감 또는 면세 등 특단의 조세정책이 절실하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도 바람직하다.

전문 서점인 양성을 위한 '서점인 학교'와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공간인 '서점인 회관' 건립도 지원해야 한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하고 교재는 서점에서만 구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정부의 과감한 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현실에 비추어 대부분이 영세한 서점업계의 자구노력만으로 제반 과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동네서점 육성책은 많다. 어찌 보면 실천한 것이 없는 것이 문제다. 정부나 국회가 동네서점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녕 문화의 실핏줄이라는 서점이 죽은 나라로 만들 것인지…. 남은 것은 정책 실천뿐이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동네서점은 죽었습니다!"라고 외치게 만들지 말라.

/이창연 한국서점조합 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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