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돈과 부패는 한통속이다'라는 월터 리프먼(미국의 유명 언론인)의 말이 있다. 정치와 정치자금의 부정적인 관계를 함축하는 말이다.그 동안 우리 정치도 정치자금과 관련한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지난 16대 국회 말에는 정치자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정점에 달했었다. 정치자금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정치인들이 국민들로부터 영원히 외면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위기의식 속에 시작된 정치관계법 개정의 초점은, 어떻게 하면 '돈이 들지 않는 정치'와 '국민에게만 책임을 지는 정치'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지구당 운영과 정치활동을 위해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정치구조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후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정치자금을 조달한 정치인이 후원을 자주 받는 기업과 그 업종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상식이다. 더구나, 상임위별로 후원기업군이 형성되는 정치현실을 고려하면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정치행태임이 분명하였다.
지난 정치개혁특위에서의 논의 결과, 이러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차단할 수 있어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고비용 정치구조의 핵심인 지구당 폐지와 기업 후원 금지, 소액다수 정치자금 모금 등이 그렇게 해서 합의되었다.
또 소액다수의 정치자금 기부가 활성화되도록 10만원까지는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안도 도입했다. 이와 함께 원내정당화의 추세를 가속화시키기 위하여 중앙당과 시·도당 후원회는 법 시행 2년 후 완전히 폐지하고 국고보조금만으로 운영하자는 데까지 합의했었다.
그 과정에서 예상되는 부작용과 역기능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했다. 현실을 고려해 연착륙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정치권 스스로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에 합의를 한 것이다. 그럼에도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국민여론 수렴의 최소단위인 지역구 조직이 필요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이유로 지역관리위원회를 부활시켜야 한다거나 후원금 상한액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것은 정치권 스스로 국민적 저항을 자초하는 우매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치의 핵심은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다. 정치관계법 개정의 큰 틀도 정치가 국민들에게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 동안 불신의 대상이었던 정치가 단시간 내에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액다수 모금제 하에서 상한액의 3분의 1도 모으기 어려웠다는 재선의원의 토로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국민들이 세금과 정치자금 기부 중에서 흔쾌하게 정치자금 기부를 선택하게 만들려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양질의 정치서비스와 함께 바뀐 제도에 대한 꾸준한 홍보도 필요할 것이다.
장미꽃은 가시 사이에서 피어난다. 정치권이 목전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더욱 멀어져 갈 것이다. 정치권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 놓은 이상적 제도를 지키기 위한 인내와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 원상복구를 위한 개정 논의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존경과 신뢰는 정치인이 자신의 권위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때 나오는 것이다.
정치권은 정치관계법을 개정할 당시의 절박한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달콤한 관행에 안주하기'가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혁신'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오세훈 변호사·전 한나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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