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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68>中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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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168>中共

입력
200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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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7월23일 마오쩌둥(毛澤東), 둥비우(董必武), 장쿼타오(張國燾), 저우포하이(周佛海) 등 지역대표 13명과 코민테른 주(駐)중국 대표 헨드리쿠스 마링, 코민테른 극동서기처 대표 니콜스키가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에서 중국공산당을 출범시켰다. 최고지도자인 총서기로는 천두슈(陳獨秀)가 선출됐다. 당원 총 57명의 꼬마정당으로 출발한 중국공산당은 이내 세계 최대 규모의 공산당으로 자라났고, 역사상 가장 긴 혁명을 통해 중국 대륙을 탈바꿈시켰다.중국공산당은 냉전 시절 소련공산당과 함께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영수(領袖) 노릇을 했다. 당 스스로 과오를 인정한 문화대혁명(1966∼1976)을 통해 수정주의 비판의 최선봉에 서기도 한 중국공산당은 한 때 그 고삐 풀린 극좌 노선 덕분에 제3세계 좌익 정파들만이 아니라 서유럽 좌파 지식인들에게도 어둠의 세계를 비추는 한 줄기 빛으로 여겨졌다. 문화혁명의 종결과 덩샤오핑(鄧小平) 집권 이래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린 중국공산당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프롤레타리아 정당이라고 부르기 어렵게 됐지만, 세계 최대 인구를 지닌 나라에서 여전히 권력의 유일한 원천이 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말이 대만을 가리켰던 1980년대 말까지의 한국 사회에서 대륙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약칭인 '중공'으로 불렸다.

중공 창당 대회에 참가한 인물들의 뒷날은 크게 엇갈렸다. 마오쩌둥은 1935년 구이저우성(貴州省) 쭌이(遵義)의 당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당권을 획득한 이래 1976년 죽을 때까지 당 최고지도자로 있었다. 일본 지역을 대표해 창당 대회에 참가한 저우포하이는 곧 전향해 반공 캠페인에 앞장서다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전범으로 기소돼 옥사했고, 코민테른을 대표했던 네덜란드인 마링은 귀국해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다 독일 점령 하에서 게슈타포에 체포돼 총살됐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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