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브라운의 장편소설 '다 빈치 코드'를 읽어가면서 꽤 오래 전에 유행했던 농담이 떠올랐다. '레오나르도'라고 했을 때 '다 빈치'라고 답하면 구세대이고, '디 카프리오'라고 대답하면 신세대라는. 당시 '다 빈치'라고 답해 구세대로 판정 받았던 한 사람으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소재로 한 책이 화제작으로 떠오르게 되니 '거 봐. 역시 다 빈치이지' 하는 생각에 내심 흐믓해졌다.
'다 빈치 코드'는 지난해 3월 출간돼 미국에서만 700만부 이상 팔리면서 '해리포터'에 필적할 만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 번역본이 나오면서 단숨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은 예수에 얽힌 비밀, 시온 수도회, 오푸스 데이와 같이 민감한 종교적 소재를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소설이지만 그 기저에는 수학의 신비가 깔려있다.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수학을 배경으로 한 책이 큰 관심을 얻게 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자연에서 발견하는 '피보나치 수열'
소설의 도입부에서부터 등장해 줄거리 전개에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피보나치 수열이다. 이야기는 루브르 박물관장의 피살 장면으로부터 시작하는데, 그 현장에는 13―3―2―21―1―1―8―5 라는 수수께끼 같은 수의 배열이 남겨져 있다. 난수표 같아 보이지만 이는 1, 1, 2, 3, 5, 8, 13, 21, 34, 55…으로 진행되는 피보나치 수열 중 처음 8개 숫자를 섞어놓은 것이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토끼 쌍의 번식 문제를 연구하다 생각해 낸 피보나치 수열은 1+1=2, 1+2=3, 2+3=5, 5+8=13과 같이 앞의 두 수를 더하여 그 다음 수를 만드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피보나치 수열이 자연에서 다수 발견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는 꽃잎의 수로 치커리 21장, 데이지 34장과 같이 피보나치 수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해바라기 꽃의 가운데에는 씨앗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데 이 씨앗의 배열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의 나선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바라기의 나선의 수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1개와 34개, 혹은 34개와 55개 같이 두 개의 연속된 피보나치 수다.
피보나치 수열을 발견할 수 있는 자연의 영역은 식물 뿐이 아니다. 한 변의 길이가 1, 1, 2, 3, 5, 8, 13, … 인 정사각형을 그림과 같이 연속하여 그리고 각 정사각형에 사분원(원의 1/4)을 그린다. 이 사분원들을 차례로 연결한 황금나선은 앵무 조개를 비롯한 바다 생물의 껍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로 그린 그림 '펜타그램'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단서를 제공하는 피살자이자 루브르 박물관장인 자크 소니에르는 죽으면서 자신의 배 위에 피로 별 모양을 그려 놓았다. 이 별은 오각형, 즉 '펜타곤(pentagon)'의 꼭지점을 이은 다섯 개의 대각선을 그리면 얻을 수 있기에 '펜타그램(pentagram)'이라고 불린다. 특히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정오각형에서 얻을 수 있는 펜타그램에는 인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인식하는 황금비가 들어 있다. 정오각형의 한 변과 그 대각선의 비를 구해보면 황금비인 약 1:1.618이 된다. 또한 펜타그램을 이루는 변은 다른 변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 비 역시 황금비이다.
황금비를 말로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게 들리겠지만 짧은 부분과 긴 부분의 길이의 비가 긴 부분과 전체 길이의 비와 같아지는 경우를 말한다.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여러 모양의 직사각형을 제시하고 가장 선호하는 것을 고르라고 했을 때, 70% 이상이 직사각형의 가로와 세로의 비가 황금비에 가까운 것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처럼 황금비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심미안에 가깝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비율로 인식됐다. 황금비는 신의 비례라 하여 신성시됐으며, 1:1.618이라는 비는 파르테논 신전이나 밀로의 비너스상 같은 예술품에 반영되었다.
'비트루비우스 인체비례'와 황금비율
더욱 신비로운 것은 앞서 언급한 피보나치 수열과 황금비가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연속된 두 피보나치 수의 비를 계산하면 1/1=1, 2/1=2, 3/2=1.5, 5/3=1.666…8/5=1.6, 13/8=1.625, 21/13=1.615…와 같이 황금비에 점점 가까워진다.
소니에르가 남긴 또 하나의 수학적 흔적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다. 소니에르는 누구나 눈에 익었을 다 빈치의 이 유명한 스케치에 등장하는 남성과 같은 모양으로 몸을 만들고 죽어갔다. 비트루비우스가 황금비를 예찬한 로마 시대의 건축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소설의 수학적 단서는 황금비로 집약할 수 있다.
'다 빈치 코드'에 대해 많은 미디어들이 쏟아내고 있는 '할리우드적'이라는 평가는 매우 적절하다. 기발한 상상력,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긴장감,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 독자를 흥분하게 하는 음모와 섬뜩한 서스펜스, 거기에 로맨스까지 흥행의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이 책은 독자들을 강한 흡인력으로 끌어들인다.
솔직히 처음에 책을 집어 들 때에는 이 책에 대한 미디어의 평이 다소 호들갑스러운 것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 필자 역시 이 여름 피서를 대신할 블록버스터로 '다 빈치 코드'만한 책이 없다는 추천사로 글을 맺게 된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 교육과 교수
협찬: 한국과학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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