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복잡하거나 어려울수록 이를 설명하려는 말은 많아지게 마련이다. 경제 부진이 지속되자 현상을 진단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용할 양식은 부족한데, 말은 성찬이다. 그 가운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단기간에 급부상한 386세대에 관한 것들이 특히 많다. 이 세대가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지만, 경제 측면에 있어서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현 경제 상황에 대한 진단으로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의 표현이 압권이다. 이 부총리는 얼마 전 우리 경제가 위기는 아니지만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환자와 비슷하다며, 경제발전의 주역을 맡아야 할 386세대가 정치적 암울기를 거치면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정치적 저항을 해야 했던 시대적 한계로 인해 지금 생산성 향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 때문인지 이 부총리가 퇴임 기간 중 국민은행으로부터 자문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은 현 정권 386 측근들의 반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 전윤철 감사원장도 지난달 하순 비슷한 발언을 했다. 50∼60대의 아버지 세대는 연필과 종이, 배갈과 자장면의 헝그리 정신만으로 1960년대 초 아무 것도 없던 국가를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만들었는데,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20∼30대가 그들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가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 재계는 더 비판적이다. 대한상의 박용성 회장은 이 부총리가 386정치인들이 경제공부를 안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경제감각이 없다며, 그들은 명분과 정치 감각만 알고 숫자로 나타난 결과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4월 총선 직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기득권층에 반대하는 젊은 진보세력이 친 기업적인 엘리트 중심의 정치체제를 무너뜨렸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들은 시장 친화적 정책과 고도성장이 가져다 준 안락함을 즐기면서도 재벌의 정치·경제적 우위를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체적으로 선배들이 보는 386세대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짓을 하면서 혜택만 보는' 몰염치한 계층인 것이다. 모건스탠리증권은 이달 초 한국 투자전략 보고서에서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가 경제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는 시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가 틀리기를 바라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일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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