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숨을 거둔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는 사회당 의원에서 자민당으로 옮긴 특이한 경력에다가 일본 총리로는 드물게 미국과 불협화음을 냈던 것으로 유명하다.1980년 자민당 파벌항쟁의 타협책으로 "화합정치"가 좌우명인 그가 엉겁결에 총리가 되자 미국 쪽에서는 "Who?"라는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1981년 군사중심의 대 소련 강경전략을 위해 일본을 군사동맹에 확실히 끌어넣으려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미일 공동성명은 처음으로 '동맹(alliance)'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스즈키 총리는 회담 후 "군사적 의미는 갖지 않는다"고 밝혀 미일 관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군사관계를 포함한다"고 해석하는 일본 외무성이 집단 반발하고 이토 마사요시(伊東正義) 외무장관이 사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는 1982년 사실상의 총리 선거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이 확실한데도 "당의 결속과 인심이 일신되기를 바란다"며 갑자기 사퇴했다.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도 일본 정계의 수수께끼인 사퇴극에 미국측 반응은 "Why?"였다고 한다.
뒤를 이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는 무기, 부품, 관련 기술의 수출을 금지하는 일본의 '무기수출 3원칙'을 미국에는 적용하지 않겠다고 레이건 대통령에게 약속했다. 일본의 첨단기술을 미국 군비에 활용하기 위해 레이건 대통령이 강력히 요구했지만 스즈키 총리가 반대했던 미일간 핵심 쟁점이었다.
나카소네 총리는 또 "일본이 자유세계의 불침항모가 돼야 한다"는 유명한 발언으로 레이건 대통령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일본이 소련을 봉쇄하는 항공모함 역할을 떠맡겠다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론" "야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평생 친구가 됐다.
이 때 스즈키 퇴임 총리는 "힘에는 한계가 있다. 일본은 평화를 추구하는 제3세계의 선두에 서서 군축을 요구해야 한다"고 재임 때 담아두었던 생각을 처음 밝혔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자민당 전 간사장은 그의 죽음에 대해 "전후 보수정치 속에서 하나의 이상형을 체현했던 정치가"라며 "혁신적인 사상을 속에 숨기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평했다.
레이건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미일 동맹강화를 부르짖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관계는 흔히 "제2의 레이건―나카소네"로 불린다. 그런데 부시 대통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을 스즈키와 비슷한 유형의 정치인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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