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씨는 무고한 시민들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여느 아버지나 아들처럼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중적인 심리상태가 연쇄살인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그는 지난해 11월 혜화동 단독주택에 침입해 김모(86)씨를 살해하는 과정에서 비명소리를 들은 파출부 배모(53)씨가 방으로 들어오자 들고 있던 흉기로 내리치려다 배씨가 갓난아이를 안고 있자 먼저 아이를 옆에 내려놓도록 시켰다. 배씨가 아이를 내려놓자 그는 그대로 흉기로 내리쳐 배씨를 살해한 뒤 우는 아이는 옆 거실 소파에 눕혀놓고 이불까지 덮어 줬다. 그는 경찰에서 "아들(11)이 생각나서 차마 아기를 해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집에서 발견된 수첩에는 아들의 이름을 적고 그 옆에 초등학생 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목록을 신문에서 오려 잔뜩 스크랩해 놓았다. 자전거, 킥보드 등의 장난감을 소개한 신문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가 노인 연쇄살인을 중단한 것은 출장 마사지사 출신의 김모씨와 지난해 11월 동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는 2개월간의 동거기간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한때였다고 경찰에서 얘기했으며 이 때 지방으로 자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경주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경찰 컴퓨터로 신원조회를 하던 중 전과자에 이혼남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이때부터 김씨와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후 집에서 그가 간질로 인한 발작증세를 일으키자 김씨는 곧장 짐을 싸서 집을 나섰고, 그는 이에 대한 배신감으로 출장 마사지사 연쇄살인을 시작했다.
그는 김씨와 헤어진 뒤 전화를 통해 만난 여성과는 성관계를 갖지 않았고 모두 하루 만에 살해했다. 또 밤에는 살인행각을 벌이면서 낮에는 파출부를 불러 청소를 시켜 깔끔한 집안 상태를 유지했다.
경찰에 처음 검거됐을 때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경찰이 어머니 김모(59)씨를 데려오자 칭얼대면서 반항하듯 "엄마! TV서 나온 것들(살인범죄) 내가 다 했어. 그리고 부산과 인천에서도 내가 다 했어. 이거 전부 다 얘기할까 말까"라고 말했다. 이에 김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이때부터 그는 자포자기한 듯 범행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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