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젊은 연인이 도시 위를 흰 구름처럼 흘러가고 있다. 남자의 초록 셔츠와 여자의 검은 단발 머리, 시인처럼 허공에 뜬 남자의 긴 발, 남자의 팔에 안겨 날개처럼 하늘을 젓는 여인의 긴 팔. 연인의 자유로운 유영(遊泳)아래 도시는 숨죽인 듯 고요하다('도시 위에서'). 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한 여인이 순백의 전라(全裸)로 등을 돌린 채 마을 위에 모로 길게 누워 있다. 여인은 가슴에 간직한 비밀(사랑)이 새나갈까 봐 턱과 두 팔을 옹송그려 제 가슴을 꼭 감싸 안고 있다. 돌아누운 여인의 눈부신 누드 아래 마을은 바야흐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비테프스크의 누드'). 나는 꿈을 꾸고 있는가?
샤갈이 왔다. 꿈의 연금술사, 아니 꿈의 전도사, 눈을 뜬 채 꿈을 꾸게 만드는 샤갈이 왔다 길래, 먹구름 비바람 속을 뚫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사람들은 지붕 위를 걸어 다니고, 바이올린 주자의 얼굴은 초록, 뺨을 맞댄 연인의 얼굴은 파랑, 길이든 문이든 벽이든 탑이든 염소와 양과 수탉들이 숨바꼭질하고, 나무와 집들은 물구나무선 채 둥둥 떠다닌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뒤흔들어놓은 듯한, 눈에 보이지 않는 초현실을 현실인 양 불러내놓은 듯한 샤갈의 그림들은 이상하게,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그것들을 이상하다고 보지않고 오히려 아름답다고, 신비롭다고 감탄한다. '샤갈이니까''그래야 샤갈이지' 라며 샤갈에 관한 한 서로 잘 통한다는 듯이 맞장구까지 친다.
그 샤갈, 우리들의 샤갈이 서울에 왔다. 색의 발견자, 아니 색의 마술사, 눈을 감아도 온통 색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샤갈이, 이번에 정말, 제대로 왔다. 80년에 걸친 샤갈 작품의 회고전 형식이라는 점을 강조해야겠다. 작가에게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평생 몇 번 만나기 어려운 놀라운 사건이라는 것도 강조해야겠다. 유대계 러시아 청년 모이세이 사하로비치가 파리에 도착한 직후 마르크 샤갈로 이름을 바꾸고 그린 1910년대 작품부터, 러시아 혁명기와 베를린 체류기와 미국 망명생활을 거쳐 남프랑스 지중해 마을 생 폴 드 방스에 정착해 그린 1980년대 작품까지 망라되어 있다. 모스크바 유대인극장을 장식한 '문학''음악''무용''연극' 패널화 연작이 눈에 띈다. 이번 회고전의 특별한 선물 중 하나다.
사실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유서 깊은 정동 길을 걸어 빗방울 흩뿌리는 시립미술관 마당의 포석을 밟을 때까지 그래, 폴 베를렌의 시구절처럼, 익숙한 꿈, 자주 보는 꿈인 양, 약간의 기이함, 그것도 익숙한 기이함을 위안처럼 샤갈에게 기대했었다. 그런데 유리 회전문을 통과해 마주친 샤갈은 이전의 익숙한 꿈을 멋지게 배반하며 전혀 낯설게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2층과 3층 여섯 개의 홀로 이어지는 120여점의 작품들을 두 차례나 돌아보고도 차마 돌아서 나오지 못했다.
유럽의 여러 미술관들을 순례하며 산발적으로 만났던 샤갈, 도록이나 샤갈 평전을 통해 만났던 샤갈, 그것으로 굳건히 샤갈이라는 고정된 성채를 내 멋대로 관념에 심어버렸던 것이 실수처럼 반성이 되었다. 유리 회전문을 돌아 나오자 먹구름은 미술관 하늘을 조금 벗어나 있었고, 광장은 조금 어두워져 있었다. 나는 미술관 옆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며 샤갈에게 가는 마음, 가도록 권하고 싶은 마음을 흐뭇하게 되뇌었다.
놀랍게도, 꿈을 꾸어본 지 오래된 사람, 아니 도무지 꿈을 꾸기가 쉽지 않은 사람, 그래서 언젠가부터 꿈의 불구자가 되어버린 사람은 샤갈에게 갈 것을 권한다.
또한 사랑을 어찌 해야 할지 삶의 가장 난해한 과제로 안고 있는 그 사람도 샤갈에게 갈 것을 권한다. 꿈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샤갈의 화폭이다. 지독한 혼란의 끝에서도 다시 사랑하고 싶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샤갈의 연인들이다. 누가 샤갈을 만나고도 사랑을, 삶을 두려워하랴. 아,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샤갈에게 갈 때는 그동안의 샤갈은 깨끗이 잊으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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