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가 한국에 대한 농업개방 압력을 한층 강화한 새로운 내용의 협상초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미국, 중국 등과 벌이고 있는 쌀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대신 관세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물론 고추, 마늘 양파 등 250%가 넘는 고율관세로 보호됐던 주요 농산품의 추가 개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18일 농림부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WTO)는 제네바 시간으로 16일 밤 오시마 쇼타로 일반이사회 의장 명의로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부문 협상 초안(오시마 초안)을 발표했다. 오시마 초안은 농산물 시장접근(관세감축) 분야에서 브라질과 인도를 포함한 20개 농업 개도국 그룹(G20)이 주장한 '구간별 감축방식'을 채택했다. 구간별 감축이란 관세율에 따라 구간을 정한 뒤 세율이 높은 구간일수록 세율 감축을 강하게 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세율이 100% 이상인 고율관세 품목이 47개나 되기 때문에 해당 품목에서의 대폭적인 추가 개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농림부는 그러나 "구간의 분할, 각 구간의 구체적 세율감축 방식 등은 향후 협상에서 결정할 예정이어서 섣불리 유·불리를 따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오시마 초안은 또 쌀 협상에서 한국의 관세화 전환을 유도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는데,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별품목(SP·Special Product) 인정과 관세를 일정 세율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관세상한'에 대한 유보적 태도가 그것이다. 오시마 초안은 개도국이 구간별 관세감축에서 선진국보다 낮은 감축율을 적용 받고 전략적으로 극히 중요한 품목은 특별품목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저율관세의무수입물량(TRQ) 증량의무도 면제해 주기로 했다.
최정섭 농업통상정책관은 "우리가 개도국 지위만 유지할 수 있다면 쌀 관세화로의 전환이 전보다 유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등이 관세화 유예를 조건으로 의무수입물량(MMA)을 늘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관세화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쌀을 특별품목으로 지정하면 TRQ 증량 없이도 고율관세로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선진국으로 분류되더라도 관세화 전환이 유리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오시마 초안이 관세상한에 대해 유보적인데다가 선진국에게도 특별품목 만큼은 아니지만 고율관세로 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민감품목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DDA 농업협상의 최우선 목표를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두기로 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현재 협상단계에서는 개도국 지위 여부가 논의되지 않지만, 정부는 협상이 마무리되면 개도국 입장에서 이행계획서를 제출하는 등 개도국 지위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시마 초안은 이달 27∼29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이사회에서 채택 여부가 결정된다. 채택될 경우 올 연말 타결을 목표로 구간별 관세감축과 농업보조금 축소 방안이 논의된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 저율관세의무수입물량
(TRQ·Tariff rate Quotas)
국내 농산물 보호를 위해 정부가 허용한 일정 물량에 대해서는 낮은 관세로 수입을 허용하지만,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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