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주황색 물감이나 크레파스를 '살색'이라고 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당연했지만 한 독일인 목사의 눈에는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흑인의 살색은 우리의 살색이 아니었고, 백인의 살색도 우리의 살색과는 달랐다.200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자마자 첫번째로 이 문제를 진정해 결국 '살색'이라는 표기를 없앤 요르그 바루트(한국명 박 용·44) 목사가 20일 본국인 독일로 돌아간다. 이 진정으로 인권위는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의 색명을 지정하면서 특정색을 '살색'이라고 명명한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며 한국산업규격(KS) 개정을 권고했고, 이후 살색은 '연주황'으로 공식 표기가 바뀌었다.
바루트 목사는 1997년 독일 교회에서 파견한 선교사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재한 독일 교회에서 시무하는 틈틈이 경기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가난한 외국인을 도왔다. 이를 위해 한국 임기 6년을 2년 연장하기까지 했다.
이 땅에서 그가 처음 느낀 것은 백인에게는 과도하게 친절한 반면 동남아 사람이나 흑인들은 두려워하고 피하는 한국인의 이중성이었다. 이중성의 원인을 그는 한국전쟁 등을 통해 백인들에게는 친근감을 느끼지만, 그 외 나라와의 교류에는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찾았다. "살색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가 단적인 예였어요.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지구상에 황인종이나 백인종밖에 없는 걸로 알았던 것이지요." 그는 인권위에 이 문제를 진정할 당시 "동남아 등의 외국인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차별이지만, 나와 같은 백인을 특별하게 대하는 것도 또 하나의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16일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만난 바루트 목사는 "한국인의 차별의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보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법규나 제도는 많이 개선됐지만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친근한 이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인간이고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고향인 옛 동독 지역 포츠담에서 목회를 계속할 계획인 그는 "독일에도 아시아나 중동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을 돕는 일을 할 것입니다. 기회가 되면 제2의 고향과 같은 한국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신기해기자 shink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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