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릴리(76·사진) 전 주한 미국대사는 19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 6월 항쟁 진압을 위한 계엄선포를 막았으며 87년 대선 직전 발생한 KAL858기 폭파사건은 명백히 북한의 소행이라고 회고했다.86년 11월부터 88년 1월까지 주한 미 대사로 근무한 그는 15일 아들 제프리 릴리와 함께 발간한 '중국통: 아시아에서 90년간의 모험, 첩보, 외교'라는 제목의 회고록에서 이같이 밝혔다.
6월 항쟁과 계엄령 포기
87년 6월 전두환 대통령이 계엄선포를 하지 못하도록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청와대를 방문했다.
6월19일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전 대통령은 90분 동안 돌처럼 굳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친서는 정치범 석방, 권력남용을 한 경찰관 처벌, 정치발전을 위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것 등을 권고하는 것이었다. 나는 계엄 선포를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을 확고하고도 분명하게 전달했다. 만일 계엄을 선포한다면 한미동맹을 훼손할 것이고, 80년 광주 같은 재난적 사건의 재발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오후 최광수 외무장관은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해 주었다.
KAL기 폭파 사건
87년 11월29일 KAL기가 안다만해 상공에서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북한측이 그 짓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서 사실을 밝혀내고, 그것으로 그들에게 큰 타격을 주자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집어넣었고 한국이 다가오는 올림픽의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을 돕기 시작했다.
한국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
전두환 대통령은 군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회고록은 시종 일관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노태우가 지명됐을 때 나는 미국이 노태우를 지지할 경우 그는 미국의 말을 쉽게 들을 만한 타입의 지도자로 생각했다. 김대중씨가 좌파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아 국무부 기밀보고서 등 모든 자료를 조사한 결과 그가 초기에 좌익 정치인이었고 반정부 활동에 연루됐을지는 몰라도 공산주의자는 아니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워싱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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