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 사는 자식 놈이 내려와서 보상금 어쩌구 하길래 '미친놈' 이라구 호통을 쳐서 내쳤슈. 애비는 논 다 잃고 깡통 차게 생겼는디…." 충남 연기군 동면에서 40여년간 농사를 지어온 김모(69)씨는 "밖에선 우리가 떼부자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인데, 땅 뺏기고 쫓겨나면 어떻게 입에 풀칠할지 밤잠이 안와유"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신행정수도로 사실상 확정된 공주·연기지구에서 만난 또 다른 촌로도 "배운거라곤 농사 뿐인데 보상금 갖고는 다락같이 올라버린 옆 동네 논은 살 수도 없고, 늘그막에 고향을 등져야 하느냐"며 고개를 떨궜다.
공주시 금남면사무소 직원이 전하는 마을 분위기에서는 분노마저 느껴졌다."도시에서 온 투기꾼들은 다 해먹고 빠졌고 남은 건 재산권 제약 뿐인데 원주민들이 큰 돈을 벌고 흥청망청하는 것처럼 보도돼 불만들이 커요. 기자들에게 뭐라고 했기에 이런 보도만 나오냐고 호통치는 주민도 있어요."
신행정수도호가 본격 항해를 시작하기도 전에 충청도 사람들은 심한 뱃멀미를 하고 있다.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며 배에 올랐던 이들 중에는 이젠 내리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2년전 쯤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 행정수도 공약을 내건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전 아파트값이 치솟자 집 없는 서민들은 "투표한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글을 대전시 홈페이지에 올렸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충청권에서도 30% 정도가 행정수도 건설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기쁨 보다는 고통이 더 큰 주민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이들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처방전이 나오지 않으면 신행정수도는 이전 논란 보다 더 큰 암초를 만날지도 모른다.
/전성우 사회2부 기자 swch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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