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만화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 모든 세대의 문화가 됐지만, 원래 만화는 어린이의 벗이었다. 30, 40대 이상의 만화 독자에게 어린시절의 추억은 주로 명랑만화와 관련한 것이었다. 명랑만화가 펼쳐 놓은 웃음보따리는, 그 시절 아이들에게 늘 화제의 중심이었다.당시 명랑만화는 자극적인 장면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던 친근한 캐릭터들이 우선 매력적이었고 짧은 한 회 이야기 안에서도 웃음과 눈물을 조화롭게 담아내던 빼어난 이야기 구성이 또한 매력적이었다. 이러한 명랑만화가 최고조에 달한 것이 1970년대였고, 이 시기 명랑만화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던 작가가 바로 길창덕 선생이다.
7월8일 서울 광화문갤러리에서 선생의 만화세계 50년을 기념하는 전시‘꺼벙이전’이 개막됐다. 꺼벙이를 비롯해 꺼실이, 덜렁이, 쭉쟁이, 만복이, 순악질 여사 등 주옥같은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일상에서 발견하는 웃음’이라는 70년대 명랑만화의 코드를 완성한 것이 선생의 성취이다.
좁은 골목길 모퉁이나 초등학교 운동장 혹은 가정집 안방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해프닝이 길창덕 만화였다. 골목야구로 이웃집 유리창을 깨고 운동회가 엉망이 되고 학기말 성적표 때문에 꾸지람 듣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선생의 펜 끝을 타면서 배꼽잡는 요절복통이 됐으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꺼벙이전’의 개막식에는 원로만화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김수정 선생이나 김동화 선생이 “우리 같이 어린 것들은 감히 상석에 나서지 못하겠다”며 구석을 지킬 정도였다.
모처럼 만화계 어른부터 젊은 만화학도까지 함께 한 보기 좋은 잔치의 풍경이었다. 하기는 신문수 만화가협회장을 비롯해 윤승운 이정문 박수동 등 내로라 하는 우리만화의 대가들이 선생의 후학이었으니, 그의 50년 만화인생은 그만큼 큰 보람이 있는 셈이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명랑만화의 맥이 크게 약해졌다는 사실이다. 하이틴 만화가 성장하면서 다양한 장르가 인기를 모으고 만화시장도 괄목할 만큼 성장했지만, 상대적으로 어린이 명랑만화는 쇠락하고 말았다.
만화문화의 토대였던 어린이들도 만화로부터 소외됐다. 최근 우리상업만화의 위기와 명랑만화의 퇴조를 묶어 이해하려는 시각은 만화문화의 출발이었던 어린이의 벗으로 만화가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존경할만한 원로의 존재가 간절하다. 다행히 우리만화는 후학들이 진심으로 모시고픈 선생 같은 분이 계셔서 행복하다. 선생을 자양분으로 홍승우 이우일 김진태 같은 명랑만화의 새싹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란다. ‘꺼벙이전’은 부천만화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겨 11월까지 계속된다.
박군/만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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