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들이 존중하고 칭찬하는 책, 그런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일 가능성이 높다.” 노벨상을 받은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했다는 이 말을 귀동냥했을 때의 그 화끈거림이란…. 우리는(아니, 나는) 그렇게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논했고, 돈키호테와 친한 척 했고, 호머를 같잖지도 않게 노래했다. 그리고 여기 ‘아더왕’이 있다.
아더왕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 같다. 학교 앞 만화방의 추억은 치지 말자. 중세 이래 숱한 작품들이 그를 기렸고, 그의 기사 란슬롯은 대형할인매장 주류코너에도 널려있다.
월트 디즈니가 침을 바른 지는 벌써 40년이 흘렀다(The Sword in the Stone, 1963. 72년과 83년 재개봉). 블록버스터 제조기로 통하는 ‘더 록’의 감독 제리 브룩하이머가 ‘킹 아더’라는 제목의 영화로 국내 개봉(7월23일)을 앞두고 있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아더 왕의 전설’을 제작 중이라니….
그렇지만, 그 전설의 왕을 제대로 아는 이도 드문 게 사실이다. 도대체 그는 누구인가? 어떤 자이기에 동ㆍ서양이 1,000년 세월을 우려먹고도 모자란단 말인가.
그 궁금증의 상당부분을 풀어줄 만한 책이 ‘아더 왕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시인ㆍ사학자이자 이야기꾼인 장 마르칼이 쓰고, 상지대 김정란 교수(인터뷰 2면)가 번역한 400쪽 분량의 8권짜리 전집 중 1, 2권이 먼저 나왔다. 3~8권도 연내 출간한다고 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남웨일즈 브리튼가 왕의 피를 받아 났으나 유복자처럼 자란 아더가 곡절 끝에 왕의 보검 ‘엑스칼리버’를 얻고, 스승과 보배로운 기사들을 만나 왕국을 통일하고 아일랜드와 노르웨이, 갈리아 등지를 복속 시킨다. 저자는 아더 왕 전설군에 속한 모든 것들을 아우른 결정판을 만들 참이었나 보다.
아더의 탄생비화, 그의 스승이자 참모였던 멀린, 하루 두 번 힘이 배가되는 기사 가웨인, 백전 무패의 미남 기사 란슬롯과 그의 연인이자 아더왕의 부인인 귀네비어의 비련, 갈라하드를 위시한 성배의 기사단,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거대한 상징으로 남은 원탁과 엑스칼리버…. 이 모든 것들을 고고학자의 이성으로 더듬어 찾고, 시인의 감성으로 묵혔다가 박력 있는 문체의 이야기로 엮었다.
이 책은 아더 왕의 이야기책만은 아니다. 책 속의 이야기들은 희랍신화에 견줄 스케일의, 다만 덜 알려진 켈트 신화의 맥락과 연결돼 있다. 판타지물의 유행과 제3세계 음악 붐을 타고, ‘반지의 제왕’이나 ‘클래나드’의 음반으로 먼저 친숙해진, 기독교 세계의 헤게모니에 밀려 이민족의 신비문화 쯤으로 왜곡되던, ‘켈트 문화’의 뿌리를 만나는 통로라는 얘기다.
이를 테면 만년의 아더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부상을 입은 채 배를 타고 떠나는 ‘신들의 영원한 젊음의 나라- 아발론’은 켈트신화 속 공간이다.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아더왕 묘비명(그의 전설은 역사와 섞여있다)은 ‘아더왕 이곳에 잠들다. 일찍이 왕이었고 이후로 왕일 사람이…’로 시작되는데 이는 왕의 귀환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직선적인 그리스 신화와 달리 파멸과 재생의 순환론에 입각한 켈트적 특성은 노자의 가르침과도 닮아 정이 간다.
먼저 번역된 1권에서는 고대 켈트시대 투쟁의 역사와 브리튼 왕가의 자손, 아더의 탄생과 권자 등극의 이야기가, 2권에서는 란슬롯 등 전설속 기사들의 무용담, 멀린과 비비안의 사랑이야기 등이 재현된다.
/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청소년 위한 '아서왕과 원탁…' 루이스 리드 그림들 재미더해
청소년을 위한 아더왕 이야기도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라는 제목으로 비룡소에서 출간됐다. 15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맬러리가 쓴 원고지 6,000매 분량의 작품을 제임스 놀스가 아더왕의 죽음을 중심에 두고 간추려 500페이지 분량의 단행본으로 낸 것. 단정한 문체와 고풍스런 서술이 돋보이는 청소년 도서의 고전이다.
책에는 19세기 후반 유럽 출판계 ‘삽화의 전성시대’를 빛낸 화가 루이스 리드의 그림들이 들어있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번역 김석희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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