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질기다. 두 밴드가 홍대 앞에 나타난 지 벌써 9, 10년.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동안 이들은 꿋꿋하게 홍대 앞 클럽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며 듣는 이들을 행복하게 했다.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홍대 앞으로 향했다가 힘이 들어서, 돈이 안돼서 떠나버린 이들은 질투를 느낄 법하다.그리고 퀴퀴한 냄새가 배인 지하 연습실에서, 땀내 나는 클럽에서 오늘도 기타 줄 튕기고 건반 두드리는 밴드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터이다.
‘인디 붐’을 주도했고 여전히 ‘인디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허클베리핀과 언니네이발관. 이들이 나란히 새 음반을 들고 팬들을 찾아왔다.
허클베리핀의 3집 ‘올랭피오의 별’은 빅토르 위고의 시 ‘올랭피오의 슬픔’에서 제목을 따왔다. 쓸쓸함, 고립감 등을 읊은 이 시는 앨범에 깔린 정서와 맞닿아 있다. “몇몇 곡들은 들으면서 별과 달처럼 붕 떠있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기용(기타, 보컬)의 말이 흥미를 당긴다.
허클베리핀이 음악적 지향점의 하나로 꼽는 포크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Time’, 록 사운드에 바이올린 선율을 얹은 애절한 사랑 노래 ‘연’, 두 개의 코드와 미 도 두 음만 썼지만 아기자기하고 세련돼 귀에 착 감기는 ‘물고기’ 등 11곡을 담았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지은 곡들로, 그들 스스로 ‘허클베리핀 음악의 총정리’라고 명명한다.
‘올랭피오…’는 허클베리핀이 자체 제작한 첫 앨범이다. 좋은 소리를 얻기 위해 뉴욕까지 달려가는 열성을 부린 결과, 자신들의 음반 중 가장 음질이 뛰어나다는 자평.
언니네이발관의 4집 ‘순간을 믿어요’는 특유의 서정적이고 예쁜 멜로디가 잘 살아있으면서도 예전보다 강한 힘이 느껴진다. 언니네이발관의 색깔이 잘 살아있는 타이틀 곡을 비롯해 기타 팝의 진수를 보여주는 ‘태양 없이’, 2집 수록곡 ‘꿈의 팝송’ 등 11곡을 실었다.
타이틀 ‘순간을 믿어요’는 밴드의 정신적 지주 이상문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과 슬픔을 달래는 희망의 메시지와 그래도 떨칠 수 없는 상실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 화두는 앨범 곳곳에 녹아 있어 ‘언젠가 나는 연기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질 거야’(바람이 부는 대로)라고 읊조리다가 문득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지는 말아요. 그대 기억 속에 남은 순간을 믿어요’(순간을 믿어요)라고 위로한다.
모든 고정관념을 벗겠다며 우직하게 지켜온 한글가사 고집을 꺾고 영어가사를 일부러 넣거나, 처음으로 객원 보컬(정순용)을 기용하는 등 구석구석 변화를 꾀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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