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 언론인이 다음과 같은 취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접하기란 쉽지가 않다. 파리에서는 한 발짝만 나오면 오늘의 거리에서 어제의 프랑스를 발견할 수 있다. 파리만이 아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찾아 봐도 제각기 개성이 살아 있으며 오랜 전통의 무게와 국적 있는 문화를 느끼게 한다. 서울은 매력만 없는 게 아니다. 국적마저 잃고 있다.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멀어지기만 한다. 그들은 물가가 비싸다고 투정하면서도 여전히 일본에 몰려든다. 일본의 어디를 가나 일본다운 맛을 즐기고 사진 찍을 것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몰린다. 서양에 물들지 않은 동양다운 이국 정서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어느 날 나는 한 미국인 일본전문 학자에게 "도쿄와 서울은 많이 비슷하지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히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까닭인즉 서울보다 도쿄에 전통적인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작은 충격 속에서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도쿄에서 잠깐 살았고 여러 번 다녔는데, 김포공항(요즘엔 인천공항)에 내려 올림픽 대로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면 눈부시게 뻗은 도로와 번쩍이는 현대식 건물들이 나리타―도쿄 거리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화려했다. 그래서 이것이 한국 발전의 상징인양 흐뭇해 하곤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한국이 얼마나 일본에 비해 전통을 가벼이 여기고, 부수고 짓는 것에만 몰두해 왔는지를 상징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말 도쿄에는 전통 가옥, 전통 음식점들이 서울보다 훨씬 많고 기모노 입은 모습을 서울에서 한복 입은 모습보다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다.
지각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이 문화의 뿌리를 잃고 미국 모방에 여념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서울은 지금 이류, 삼류 미국 도시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며, 지방 도시들은 그런 서울을 따라 하기 위해 안타까운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 무엇이고 남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저 미국만 따라 하면 그것이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행정가, 기업인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계 속의 문화 국민으로 서기 위해서는 현대에 맞는 고유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기에는 우리의 문화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일까?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 한림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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